[요13:34-35,엡4:32-5:1ㅣ 김남수 목사]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엡4:32-5:1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설교전문
교회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천국 가정입니다.
천국가정이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고, 예수님을 신랑, 성도들을 신부, 서로 서로를 형제 자매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하는 가족이요 사랑의 공동체 입니다. 또 하나님 아버지는 참아주시며,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탕자비유에 용서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잘 비유로 드러나 있습니다. 가족은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받아주고 참아주며 용서하는 것입니다.1세기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친절히 대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을 친절한 사람들이라 했습니다. 가정에서 모여 서로 사랑하고, 용납하며 기쁘게 사는 모습을보고 사람들이 집에서 모이는 가정교회에 날마다 들어와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 났습니다.
초대 교인들의 삶의 중추를 이루었던 사랑과 용납은 예수님의 생명의 충만한 결과인데, 사랑과 용서는 동전의 안과 겉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사랑하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옮겨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그 사랑 가운데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며,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하나님의 사랑을 열심히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서로 섬기며,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여기서 삶의 의욕과 힘이 나왔기 때문에 세상을 이겼던 것입니다.
여기서 삶의 의욕과 힘이 나왔기 때문에 세상을 이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기독교가 이 사랑의 힘을 잃어버렸습니까?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일 때는 서로를 깊이 알고, 친밀하며, 깊이 서로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대그룹인 성전 중심의 모임이 되고, 집에서 모이는 소 그룹이 급속히 약화되었습니다.
그러자 가정에서 모이는 친밀한 사랑의 실천현장을 잃어버리게 되고, 사랑의 능력은 점점 약화되었으며 그 결과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을 예수님은 미리 아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12제자들과의 고별 설교에서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내가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 천국가족의 생활규칙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 천국가족의 생활규칙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용서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구체적으로 용서로 나타났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관해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때 우리의 모습이 환하게 밝히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해결방법을 바울은 엡 4:32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에배소 교인들의 영적인 어두운 모습이 하나님을 본받아 변화되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엡4:25~31
그리고 서로 친절하고 사랑하며 관계를 친밀한 관계로 회복하는 길을 제시합니다.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인 사랑과 바울이 말한 용서는 같은 사랑을 실현하는 동전의 안과 겉과 같은 사랑의 양면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용서로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용서는 교회생활과 가정과 영적 가족생활의 중요한 생활 수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수칙인 사랑과 용서에 관해 말씀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수칙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면 건강한 행복한 가정과 건강한 행복한 교회가 되고 우리의 삶이 기름지고 풍성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1. 사랑과 용서는 왜 중요합니까?
먼저 사랑은 새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새 계명이란 처음 새로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옛 계명도 핵심이 사랑입니다. 문자적으로 똑같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계명을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독선에 빠져 문자만 남고, 사랑의 생명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사랑의 실체를 삶을 통해, 본을 보이시고,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하여 주님은 영적 이스라엘인 자신의 몸 교회를 선택한 것입니다.
새 계명인 사랑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옛 계명을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인 교회가 즉 성도들이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할까요?사랑은 주님의 명령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생활수칙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사랑해도 좋고 사랑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12명의 제자 공동체는 이 사랑을 실천하는 가족 이외 사랑의 체험의 장이었습니다.
또한 용서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 역시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 옮겨 그 죄를 지시고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하나도 안 지은 것처럼 깨끗이 보혈로 씻고 용서하여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깨끗이 용서해 주십니다.
엡5:1
“너희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하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아시고 보시면서도 그리스도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용서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만큼 인간은 고귀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친절히 여기며 혹시 허물이 있다손 치더라도 서로 용서 하십시다. 왜 우리가 저주 대신 축복과 사랑과 용서의 말을 해야 합니까?
약 3:9에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미워하든 싫어하든 나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내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그가 “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축복하고 칭찬하며 격려와 사랑의 말을 합시다.그러면 우리 교회가 우리 구역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나는 우리 예봄교회가 용서를 배우고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때 초대교회의 같은 서로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생명력 있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2. 사랑과 용서를 어떻게 실천할까요?
먼저 사랑의 실천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팔아버린 가룻유다의 배신을 아시고도 끝까지 그를 안아 주신 일_그가 주님을 버려도 주님은 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제자들이 먼지 나는 길을 걸어서 제자들의 발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 그 발을 손수 씻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아파하고 괴롭고 더럽혀진 발을 서로 씻기는 것입니다.
또한 용서를 어떻게 실천할까요?
엡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먼저, 용서하기 위해서는 친절히 대하라고 합니다.
친절이라 “크레스토스”인데 비슷한 말이 ‘크리스토스’란 말이 있습니다. 초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란 “친절한 사람을 이라고”했다고 합니다.친절이란 어떻게 대하는 것입니까?
“상대방이 나에게 행한 일에 상관없이 그에 대해 올바른 말을 하고, 올바른 태도를 취한다”는 것입니다.아브라함 링컨의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스탠틀 이란 정적이 있었는데, 그가 링컨에 관해 그를 “오리지널 고릴라”라고 악의 찬 말로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를 장관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참모들이 링컨에게 항의를 하자 링컨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 자리에는 그가 적임자입니다”그렇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친절입니다. 바로 친절이 용서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를 실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용서의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3년이나 같이 다녔던 수제자 베드로가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번이나 물으시면서 용서하시고,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내양을 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용서의 주님이며 회복시켜 주시고, 축복하시며 쓰시는 주님이십니다.
손양원 목사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용서의 마음이 충만 했습니다.
목사님의 아들을 죽인 자를 용서하시고 그를 양자로 삼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의 원자폭탄이라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다녀가면 교회와 그 지역 주민의 심령과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랑과 용서하기 위해서는 첫째, 친절해야 하며 둘째, 용서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이해해야”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상대의 아픔과 고통 괴로움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용서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그가 나에게 분통이 터지는 말이나 행동을 했음에도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야 용서가 되기 때문입니다.그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어린 시절이나 성장과정을 살펴 보십시다.
그가 살면서 받은 상처를 생각하십시오. 분하고 억울하지만 그가 나에게 그렇게 한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셋째는 용서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용서와 사랑은 결심에서 마음과 행동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하십시오. 용서하고 사랑하고 싶은 감정이 없는데요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와 사랑은 감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결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힘을 주시고 용서하고 사랑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코리텐붐 할머니가 종전 후 세계를 다니면서 용서라는 메시지를 설교하고 다니는데 코리 할머니가 감옥에 있을 때 그를 몹시 괴롭혔던 간수를 만났습니다. 그가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하나님께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부탁 했습니다.
코리는 온몸이 떨리고 얼어 붙어 용서의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용서하기로 결심하라고 하자, 그녀는 감정이 없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며 결단하고 용서합니다 하고 손을 내밀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고 용서가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며 용서하게 되었습니다.그렇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용서되고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단하겠습니까?
3. 용서와 사랑의 실천의 결과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배지”가 “사랑의 배지”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용서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정복한 강력한 힘이,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 있는 세상이 볼 수 있는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날마다 집에 모여 서로 사랑하고, 기뻐하며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가정교회로 사람들이 모여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해갔습니다.”
또한 서로 사랑하고 마음을 같이 하며 열심히 기도할 때 기도에 막힌 것이 없이 능력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힘이 있으며 “기도응답”이 신속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 구한대로 받는 것입니다.
기도에 응답 받으려면 막힌 담이 없이 용서하고 서로 축복하고 위해서 기도하십시오하나님께서 구한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용서하고 사랑하면 치유가 일어납니다.
막힘 담이 무너지고 기쁨이 솟아 나오며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도 치료가 급속히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풀지 못하고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막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싶어도 축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함으로 막힌 담을 허물어 버리고 기도하면 기도가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주는 복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땅에서 맨 것을 풀고 용서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이 가정과 자녀들과 사업과 교회에 임하며 풍성한 복된 삶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수칙인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로 결심하십시오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시므로 복된 행복한 가정, 개인, 건강한 예봄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