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22-27ㅣ최병희 목사]
지금은 소천하신 서울중앙성결교회 이만신 목사님이 군산 비행장 옆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입니다. 주일 낮. 예배가 끝날 때쯤 11시 55분 정도가 되면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이 목사님의 축도를 받으려고 왔습니다. 언어가 통하는 자기들끼리 예배는 드리지만 축도는 못 받으니까 비행장 인근의 이만신목사님 교회로 축도나마 받기 위해서 나왔던 것입니다. 축도가 무엇이길래 그 미국 병사들이 그렇게 축도를 귀하게 여겼을까요? 간혹 목사님들 중에도 보면 “예배시간에 축도가 가장 중요하니 축도 전에 나가지 마세요! 예배시간에 늦더라도 교회에 나오셔서 축도만이라도 받으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축도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강조들을 하시는 걸까요?
오늘 본문은 구약의 축도, 대제사장의 축도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대제사장인 아론과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의 역할을 할 그 아들들에게 이같이 명령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라.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27 그들이 이렇게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매절마다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하며 원하며 원하노라~”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그 복이 무엇입니까? 지켜주는 것이 복입니다. 또 은혜 베푸시고 평강 주시는 것이 복입니다. “지키시고, 은혜 베푸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서 은혜로 평강을 주시는게 복이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로 주신 그 평강의 뜻이 무엇입니까? 샬롬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샬롬(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샬롬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 짓기 전에 누렸던 복의 상태입니다. 죄가 아담에게 들어가기 전에 아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샬롬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와의 관계도 샬롬이었습니다. 자신의 영혼의 상태도, 육신의 상태도, 자연과의 관계도 모두 다 샬롬의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천지를 지으시며 좋았더라! 를 반복하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좋았더라(1:4) 땅과 바다를 갈라놓고 좋았더라(1:10) 정원을 잘 가꿔놓고 좋아더라(1:12절)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좋았더라(1:18) 큰 바다 짐승들과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21) 땅의 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고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3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very good!! 하셨습니다.
죄가 들어가기 전의 세상이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보통 다 만들어놓고 좋았더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누릴 것을 생각하면서 좋아하고 계십니다. 아직 온 세상천지 만물은 다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공사 중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이 행복해 할 것을 생각하면서 좋았더라~좋았더라~심히 좋았더라~ 하시는 겁니다. 정말 주지못해서 안달이 난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의 상태가 언제 깨졌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마귀의 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가 들어 옮으로 이 모든 샬롬의 상태가 깨집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가 들어오자 자신들의 벗은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워 숨습니다(8) 서로의 책임이라고 원망을 하고 책임을 전가합니다(12)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벌을 내리십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종일토록 땀을 흘려야 소산을 먹습니다. 그럴 때 누구의 마음이 가장 아팠겠습니까? 하나님이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무너져 버린 샬롬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창세기 3:15에서 여인의 후손을 약속합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의 후손을 보내기 위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오시다가 모세를 통해 출애굽하게 하십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성막을 통해 제사법을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여인의 후손을 보낼 통로가 될 그 민족들이 성막에 나와 자신의 죄를 사함 받으면 그것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복을 빌어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인의 후손을 통해 너희가 잃어버린 그 샬롬을 회복시켜 줄께!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이사야 선지자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구원자 예수님에 관하여 여러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사53: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주목해봐야 할 단어가 평강의 왕입니다. 이 평강이 샬롬입니다. 샬롬의 왕이 예수님이시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 삼호 쥬얼리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군함을 보내서 빼앗긴 그 배와 선원들을 구출해 왔습니다. 최근에 코로나19로 인하여 해외에서 발이 묶인 교민들을 전세기를 띄워서 데려왔습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빼앗긴 그 평강을 다시 찾아와 줄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방법으로 샬롬을 회복해 주십니까? 이사야는 “53: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샬롬)를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샬롬)을 누리게 된다고 예언합니다.
그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을 누가복음 2장 14절에 보면 천군과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샬롬)이로다” 라고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는 사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성을 입성하실 때 예루살렘성을 바라보며 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눅19: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이렇게 영광스러운 날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이 우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그 평강(샬롬)을 자신이 징계받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건만 백성들이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 죄와 저주의 값을 지불함으로 잃어버린 평강(샬롬)을 회복하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죗값을 다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 온 인류의 죗값을 담당하셨다고 말합니다. “히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자신의 몸을 드려 잃어버린 샬롬을 회복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대제사장의 신분으로 하신 축복기도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이 성막에서 제사를 드린 후에 떠나가는 백성을 축복하듯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단번에 드리신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한 만남을 마무리 하실 때에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축도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파송의 말을 선포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성령을 받으라 부탁하신 후 그 자리를 떠나십니다.
왜 성령을 언급하실까요? 이제 십자가에서 성부하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던 샬롬을 회복해 놓았다. 그런데 이 사실은 너희 힘으로 깨달을 수 없다. 오직 성령께서 가르쳐주셔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보면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는 신약교회의 축도가 나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성자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와 그 예수님을 보내주신 성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것을 적용시키는 성령님의 교통이 나옵니다.
정리합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구약의 축도와,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직접 하시는 예수님의 축도, 그리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는 신약의 축도는 내용면에서 동일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샬롬)이 있을지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대제사장들의 축도를 통해 하나님의 피맺힌 소원이 평강(샬롬)임을 가르쳐 주시면서 그것을 회복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아 잃어버린 평강(샬롬)을 회복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신약교회의 축도를 통해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예수님이 회복하신 샬롬을 우리에게 적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축도를 들으실 때 “예배가 끝나는구나! 목사님이 또 똑같은 축도를 하시네!” 하시지 마시고 나에게 평강(샬롬)을 주시기 위해서 “원하고 원하며 원하노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평강(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버리신 그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평강을 오늘도 나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님과 교통하시길 바랍니다.
평안을
마음에 걱정 요동함이 없고 안정된 상태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복시켜주길 너무나 원하시는
영.혼.육.관계.환경 등의 원래 창조된 상태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평안 회복을 예수님이 이미 이뤄주셨고 성렁님이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사랑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제 예배 축도 시간에 이를 꼭 기억하고 받겠습니다
축도가 이런의미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