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13-26 | 김남수 목사]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 중인데, 지금 276명이 탄 이 배는 미항을 떠나 베닉스로 향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위험한 항로를 무사히 통과하리란 요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전하지만 불편한 미항을 떠나서 모험을 해서라도 베닉스에 가 향락을 누려 보겠다는 것입니다. 상식과 지식의 세계를 떠나서 요행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위험한 여행이 지금 시작되고 있습니다.
13절에“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와 출발하는 데 한참동안은 항해가 순조로웠습니다. 이에 그들은 안심하고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올린 후 그레데 해안을 따라 베닉스에서 향락을 즐기자고 하면서 기분 좋게 떠났습니다. 지금 이 배는 네 부류의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첫째는 배를 관리하는 선장과 선원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능력과 기술과 경험을 믿고 모험을 하겠다고 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수들을 감시하는 군인과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이 배에서 최고의 권세를 가진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는 선주와 물주들입니다. 이배는 많은 물자를 실었습니다. 이 물건의 주인들이 배에 탔습니다. 고급 장사하러 로마에 가는 사람들인데 돈이 많은 부자들입니다. 넷째는 아무 능력도 권세도 없는 죄수들입니다. 이들은 초라하고, 가다가 죽거나 죽여도 그만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기분 좋은 항해는 잠깐이었습니다. 14절에“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얼마 못가서 광풍이 밀려옵니다. “유라굴로”라는 이 광풍은 북동풍으로서 계절풍입니다. 이때쯤 되면 으레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이“가지 말자”고 했는데, 예외 없이 이 계절풍이 불어 닥쳐옵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서워하는 태풍 같은 것이 불어왔다는 말입니다.
15절, 16절에“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그들이 탄 이배는 광풍에 휘말려 방향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은 바람 부는 대로 가야만 했습니다. 광풍에 쓸려가는 배는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밀려갔습니다. 폭풍의 예비책으로 작은 배를 큰 배 위로 끌어올리고 선체를 들러 매어 파선을 막으려 했습니다.
17절에“거루를 잡아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가더니” “스르디스에 걸릴까”스르디스란 모래톱을 일컫는 말입니다. 태풍이 일게 되면 바다 밑에 있는 모래가 물결에 밀려 모래 산에 생겼다 없어졌다 합니다. 이런 것을 한번 잘못 만나서 딱 부딪치면 그 배는 끝나는 것입니다. 태풍으로 인해 생긴 바다 밑의 모래 산, 여기에 걸릴까봐 무서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쫓겨 가더니” 바람이 치고 눈앞이 뽀얗게 되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요. 그대로 쫓겨 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디 가서 부딪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대로 쫓겨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연장을 내리고” 심히 애쓰고 노력하다가 마지막에는 연장을 버려요. 배에는 노도 있고, 돛대도 있고, 키도 있고 ……. 배에 필요한 온갖 연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포기하고 다 버렸어요. 인간 능력의 한계가 온 것입니다. 능력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18절에“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배에 가볍게 하기 위하여 짐을 벌릴 수밖에요. 이제는 생명이라도 건져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짐을 바다에 다 버립니다. 이들은 얼마나 아까웠겠습니까? 저들은 이런 지경까지 왔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절에“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배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까지 버렸어요.
그 다음에는 20절에“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이젠 소망이 없어요. 이젠 죽었구나. 합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요. 또한, 저들은 사 나흘이나 굶었어요. 먹지 못했어요. 워낙 배가 요동하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의 고등학교 친한 친구가 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탔는데, 유능해서 큰 배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저와 이런 얘기를 합니다. 한 번 출항하면 4개월도 되고, 6, 7개월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몇 개월 만에 한 번 육지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 번 바다에 나가면 거센 풍랑도 만나고 하는데, 몇 달 나갔다가 들어오면 비쩍 마른다고 해요. 뚱뚱한 사람도 홀쭉한 몰골이 된다고 해요. 그리고 잠을 잘 수가 없대요. 하도 흔들리니까요. 음식을 먹을 수가 없대요. 소회가 안 되서 고생을 한다고 해요. 이렇게 몇 달을 지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답니다.
바울이 탄 이배는 여망이 끊어진 지경이 되니 저들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뱃멀미하니 먹을 수 없고, 우선 마음이 죽었으니 먹을 수가 없습니다. 당장에 꽝하고 부딪칠 것 같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굶었습니다. 모두가 다 절망하고, 여망이 전혀 없어요. 바로 그런 순간에 아무런 존재 가치도 없다 싶었던 죄수 바울이 딱 일어나서 권세 있게 말합니다. 이 시간에는 군인, 선주, 선장은 아무 존재도 아닙니다. 당당하게“갑시다.” 하고 떠들던 선장과 선주도 이제 할 말이 없습니다. 바울이 권세 있게 저들 앞에 서서 말씀합니다. 당당하게 외칩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기에 신앙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편안하고, 잘되고, 번영과 자유 ……. 이것이 있고 난 후에는 방종 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는 타락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환난을 당할 때, 이때에는 신앙인이 권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절망할 때, 그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권세가 주어집니다. 바울은 죄수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당당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21절에“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아주 확실하게 얘기합니다. 바울의 말씀하는 내용의 첫째는 바로 잘못된 것을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이게 중요합니다. 너희가 내 말을 안 듣고 미항을 떠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거예요. 여기서 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지나간 일을 묵살하려고 합니다. “그게 다 지나 간 건데 뭘 …….”이건 안 됩니다. 그러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사도바울은, 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죽게 되었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떠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잘 못 됐다고 하는 것, 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인정하고 나서 사도바울은‘내 말을 들으라,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씀합니다. 풍랑 속에서 현명한 사람은‘이 위기에서 안정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세요. 위기를 모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내 말을 듣고 떠나지 않았다면 좋을 뻔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라는 거예요. 너희들이 잘못됐다고 하는 것, 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인정하고 나서 사도 바울은‘내 말을 들으라. 이제는 안심하라.’고 말씀합니다. 풍랑 속에서 현명한 사람은‘이 위기에서 안정을 얻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세요. 위기를 모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라. 기운을 차리라.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마는‘그런 고로 음식을 먹으라.’말씀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22절에“이제는 안심하라” 이 말씀이야말로 복음입니다. 안심이라는 말을 의학용어로 의사가 환자를 권면하고, 환자가 낙심할 때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안심이라는 말은 좋은 마음, 기쁜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를 설명하면,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기 때문에 안심하라는 거예요. 선지자, 사도의 말씀이 전해졌어요. “떠나면 망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하나님의 말씀, 계시가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이요. 함께 하심이 아니냐? 그러니 안심하라 하는 뜻입니다.
또한 행 23:21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이곳이 무슨 말씀입니까? 로마까지 무사히 간다는 말씀입니다. 가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런고로 무사할 것이다. “안심하라”-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실 때에 보디발의 집까지 복을 주셨어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믿는 사람 때문에 전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바울이 이 배에 있는 한 이 배는 무사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가야하니까 이 배는 무사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이 말씀에는 더 귀한 뜻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다 내게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24절에“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울이 꼭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바울이 꼭 로마까지 가야하니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니까 그렇습니다. 또, 여기에 탄 사람이 다 무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중인이 되니까요. 여기서 되어 진 모든 사건들은 큰 사건이요 굉장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로마에 가서 전부 증인이 될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런고로 무사해야 합니다. 한 사람도 다치면 안돼요. 하나님의 능력이니까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증인됨, ……. 이 모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 모든 생명을 바울에게 주셨습니다. 모든 생명이 바울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25절에“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나는 …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 그런고로 안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과 연결이 돼서 계속 연락을 합니다. 연락이 있으니까 소망이 있고, 소망이 있으니까 절대로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난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그대로 될 줄 믿는다. 이 얼마나 확실한 약속입니까? 하나님의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생명만 건질 뿐이요, 너희들이 애지중지했던 이 물자, 이 배는 다 파손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유대 사람 아버지와 아들, 단 둘이서 사막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입니다. 그런데 그만 길을 잃어 버렸는지, 마을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써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가지고 갔던 물도 다 떨어져서 목말라 죽을 지경입니다. 아들은 미처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난 지쳐서 못가겠습니다. 이젠 정말 죽게 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가보자.” 그러나 아무리 가 봐도 보이는 게 없어요. 그런데 저 쪽에 무엇이 있는 것 같아서 허겁지겁 달려 가 보니 무덤이 하나있어요. 그게 마을의 집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아들은 또 실망을 합니다. “아버지ㅡ 무덤 밖에 없지 않아요? 마을이 어디 있어요?” 이렇게 낙심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얘야, 걱정하지 마라. 무덤이 있으면 마을이 있단다.” 정말 조금 더 걸어가니까 과연 마을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징조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지 지금은 안 보이지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저 앞에 있는 것들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모두가 실망하고, 모두에게 소망이 없어졌어요. 바로 그 시간에 일개 죄수 바울이 우뚝 서서 큰 소리로 말씀합니다. “안심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게 하신 말씀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소. 당신들은 내 말을 믿으세요.” 그러면 살 것이요.―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메시지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본문이 주는 메시지를 잊지 말고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나 하나가 가정에 있고, 나 하나가 직장에 있을 때에 믿는 사람인 나 하나로 인하여 내가 속해 있는 그 곳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고,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전체가 무사합니다. 본문에서 본 바, 그 배에 타고 있는 276명의 생명은 바울 하나 때문에, 바울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 때문에, 다들 무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