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5:13-15, 요한복음 1:9-14ㅣ김남수 목사]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초청문화축제』를 위해 여러분들이 끼와 재능을 모아 작품들을 만들고, 전시하고, 시장보고, 음식 만들고 등 여러 가지로 준비하시느라. 또한 VIP들을 초대하느라 참 수고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 40여분이 오실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같이 칭찬과 격려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초청한 분들과 준비한 우리들에게도 기쁨이 넘치는 줄로 믿습니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쓸쓸하게 탄생하셨지만,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찬양하였습니다. 성탄절은 하늘과 온 지구에서 큰 축제요, 기쁜 잔치인 것입니다.
잠언 15:15절에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잔치는 기쁜 날이요, 행복한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잔치한다”하니, 얼마나 행복한 자 입니까? 요새말로는 “파티한자”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즐거운 파티가 이어지는 그런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 잔치한다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사람의 문제입니다. 기쁜 사람이 모여 즐거워해야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치는 음식이 부족할 만큼 손님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가 1년 동안 관계를 맺고, 여러분들이 사랑을 베풀었는데, 4여명 이상의 초청한 분들이 오실 것입니다. 초대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사진, 밤을 세며 PPT를 만드느라 참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로 시끌시끌해야 잔치입니다.
또한 즐거운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잔칫집에 가시거든 조심 하십시오. 잔칫집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 시간만은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이런 좋은 말, 덕담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데 잔칫집에 가서 누가 어떻고, 어떻고, 저렀고,…… 이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잔칫집에서는 그런 소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꽃피우고 즐거워하고 음식을 먹어야 잔치지! 이 시간에 심각한 이야기 하려고 오는 사람. 별로 달갑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도 식사 시간에만은 절대로 딴 얘기하면 안됩니다. 이 시간에 모처럼 만났다고 잔소리를 하고, “공부 제대로 해라” “연애 잘 되느냐”“ 어떠냐”….등. 별소리를 다 하면, 아이들이 화가 나서 숟가락을 내 던지고 나가버리지 않습니까? 잠깐의 식사도 적어도 잔치입니다. 잔치는 잔치답게 덕담을 하고, 칭찬을 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 했습니다. 서로 웃고, 칭찬하고, 존경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이것이 잔치인 것입니다. 잔칫날은 사랑만이 있고, 덕담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초대받는 VIP들이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역시 다르구나! 감동을 받고, 나도 예수님 믿어야지! 하고 마음이 열립니다.
또한 특별히 잠언 15:15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잔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빛이 나야 합니다. 얼굴을 어떻게 하면 빛나게 합니까? 마음이 성령충만하고, 은혜가 있으면 얼굴이 빛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잔치입니다. 얼굴이 빛나는 사람들이 모여야 잔치이지!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난하고 비꼬고 얼굴을 찌푸리고 하면, 그것이 무슨 잔치입니까? 이런 것 있으면 돌이켜야 합니다. 잔치는 항상 기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절, X-MAS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 사랑하십니다. 고난 속에서도 사랑하십니다. 징계 중에서도 사랑하십니다. 진노하시면서도 아버지의 깊은 마음속에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매일 매일 새롭게 깨닫고, 간증을 하며, 그리고 만족과 사랑이 넘칠 때, 바로 이런 사람이 진정한 의미에서 매일같이 잔치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주제를 바꾸어 『영접하는 자에게 주시는 권세』에 관해 생각해 봅시다.
한 외판원이 어느 날 늦은 밤에 호텔에 와서 방을 하나 얻겠다고 했지만, 안내원은 빈방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빈방이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 외판원은 낙담과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호텔로 와 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친 모습으로 다른 호텔을 찾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으로 호텔을 나서려고 할 때, 호텔로비에서 쉬고 있던 점잖은 신사 한 분이 다가와서 말합니다.
“방이 없다고 하니 몹시 힘드시겠습니다. 나는 『윌리엄』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 늦은 시간에 여기 저기 다녀봐도 방을 얻을 것 같지 않고, 몹시 피곤해 보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지금 호텔에 묵고 있는데, 내 방은 트윈 베드 작은 침대가 둘이 놓여 있습니다. 내가 한 침대를 사용하고 한 침대는 비어 있습니다. 그러니 나와 함께 하룻밤을 동숙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이 외판원은 뜻밖의 친절에 감사 감격, 감지 적지해서 “그러지요”하고 그 분의 안내로 그 호텔방에 들어 갔습니다. 짐을 내려놓고 하룻밤을 쉬었습니다. 새벽이 되었을 때, 눈을 떠 보니 벌써 그 젊잖은 신사는 세수를 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판원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성경보고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나와 함께 기도하고 성경 읽고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세를 진 터라 싫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 그리하겠습니다.” 급히 일어나 세수를 단정히 하고 앉았는데. 그 신사가 성경을 죽 읽고 나서 기도를 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대통령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특별히 마주 앉은 자신을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경건의 순서는 끝났습니다.
“제가 한 말씀을 드려보겠는데….”하고 그 신사는 외판원의 손을 잡더니 하는 말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마음이 없으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제부터 내 친구요, 내 형제입니다.” 그리고 굳게 악수를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는 순간 그 외판원은 세상이 뒤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에 이런 고마운 분이 다 있나” 바로 그 신사분이 뒤에 알고 보니,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라고 하는 당시 미국의 국무부 장관이었습니다. 이런 분을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이 외판원은 이 감격으로 이 감격으로 한평생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에 관한 소중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에 따라 자녀의 권세가 주어진다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신분이 주어지면 신분에 맞는 권세가 법적으로 주어집니다. 왕자는 왕이 될 권세가 주어집니다. 오늘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은 이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가지는 진리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이란? 결코 내 선행이나, 내 공로나, 내 의나, 내 노력에 의해서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말씀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 수용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즉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내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을 위하여 오심을 내가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모셔 들이는 데 있습니다. “영접하다”라는 말은 곧 믿는 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접한다” 것은 믿는 것이요, 믿는다는 것은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믿음입니다.
그러면 인격을 어떻게 영접하는 것입니까? 인격과 인격의 만남에서 영접이란 말은 믿어주는 것이요, 신뢰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그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홀만 헌터』가 그린 유명한 성화가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 그림입니다. 여러분도 카드나 기독교 서점의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림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있고, 문에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조그만 한 구멍이 있는데, 굳게 닫힌 문 밖에서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대문은 밖에 손잡이가 없는 문입니다. 그 대문 밖에서 등불을 들고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오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계시록 3:20) 문 밖에서 두드립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의미입니다. 개개인의 마음속에 오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오신 예수님은 마음을 열고 모셔 들여, 마음속에 예수님이 충만이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를 영접하는 것은, 곧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하였습니다. 이것은 영생과 중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역사하실 때 만이 이 귀한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서 요한 복음의 가장 핵심 되는 성 육신의 말씀을 읽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합니다. 사도 요한은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영접하는 순간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새로운 세상이 전개됩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뉘우치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놀란 것은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기다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엄청난 사랑에 감격한 순간, 그는 지난날의 어두운 과거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잔치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의 권세입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늘에서 큰 기쁨의 잔치가 열립니다. 이 땅에서도 믿는 우리에게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를 누리며, 이전과 다른 기쁨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