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인간과 더불어 고난을 나누기 위하여 자원하여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아니, 어느 인간도 겪을 수 없는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사생아가 아닌가?’ 의심도 받았고, ‘사단의 하수인’이라는 비난도 받았고,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도 당했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인간의 고통과 고난은 오랜 세월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주제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는 "신이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할 수 없다면,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전지전능한데 인간을 고통 가운데 버려둔다면, 신은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동시에 증명해 보여주시고, 이 딜레마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고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고난은 잠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고통과 죽음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아직 고난으로 가득 찬 파괴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단을 대상으로 영적 싸움을 할 때, 어떤 때에는 고난만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마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요일 3:8). 예수님은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있어라!" 말씀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없어져라!” 한마디 하면 악마의 일을 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방법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승리를 이루셨습니다. 고난을 통해서만 승리할 수 있는 영적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한 영적 싸움에 참여하려면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지 말고 사명에 두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우리를 고난에 초청하실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사명에 두고, 천국의 상급을 기대하면서 살면 고난의 초청에 응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난과 행복이 상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를 위한 고난의 끝에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이 좋아서 받아드리신 것은 아닙니다. 장차 있을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참으셨던 것입니다(히 12:2).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위해 고난을 선택했다면 더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한 것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여 인생의 여러 고난 중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사랑하는 예봄 가족 되시길 바랍니다. <최영기목사 글 수정하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