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1-13절 | 최병희 목사]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시고,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표적은 네 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표적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고, 예수님의 신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표적입니다.
본문 1절의 ‘그 후에’는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누워있던 사람이 치유된 사건을 말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갈릴리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 계시니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했습니다. 그 사이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을 행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듣고 병낫기를 원하니까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데리고 쉬기 위해서 벳새다로 배를 타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조차도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짜증을 내던지, 도망을 가던지 할텐데 예수님께서는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막6:34)
1. 빌립의 분석
그래서 “빌립을 시험하고자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떡을 어디서 좀 구할 수 없겠느냐?(요6:5)’" 라고 물어보십니다. 이 테스트에 빌립은 다른 사복음서를 통해서 보면 아무것도 없는 빈들에서 수많은 군중을 바라보고는 “그들을 먹이려면 각 사람으로 조금씩 먹게 할지라도 2천만원 어치의 떡이 부족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빌립은 참 합리적이고 계산적이어서 설사 그 많은 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저녁시간에, 어디에 가서 한꺼번에 그 많은 떡을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분들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잘못하면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때로는 우리의 이성과 상식을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내 주장만 하면 교회 일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안드레의 믿음
빌립의 그런 인간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5천명이 먹고도 열두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믿음으로 반응하여 기적의 씨앗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여기 한 아이가 있는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이 많은 사람이 먹기에는 한없이 부족합니다만 예수님 능력으로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한번 해보세요(요6:9)”
안드레의 은사는 인도하는 은사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데려왔고, 헬라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그가 어떤 대단한 능력이 있었다거나 무슨 특별한 것을 가르쳤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께로 "와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성격상 나설 수 없고, 새가족이라 잘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끌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안드레와 같은 성도님들이 계셔야 합니다.
또, 예수님이 표적을 일으키는데 다리가 된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3. 어린아이의 드림
오병이어의 표적은 결정적으로 어린 소년이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먹으려고 싸왔던 도시락을 주님께 내놓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어린아이가 바친 보리떡과 물고기는 참 변변치 않은 것입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집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으로도 주고 나귀에게도 먹인 음식이었습니다. 물고기도 고기잡이 한 후 집으로 가져가자니 작고, 살려주자니 아까운 크기의 고기를 바닥에 던져놓은 것을 주어다가 소금에 절인 것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한 끼 식사인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려지니 남자 장정만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나 남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주님 손에 올려드린 어린 소년의 작은 헌신과 믿음을 통하여 빈들의 기적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부족한 것, 모자란 것만 생각하며 아쉬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연약한 것, 남보다 못하는 것만 생각하며 절망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문제는 내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고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 연약한 내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4.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
예수님의 기적의 목적이 단순히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식사 한끼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배고픈 군중을 보시고 먼저 밥거리를 걱정하셨습니다. 주기도문에서도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육의 양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지만 자신은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기 때문에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한다”고 하시면서 자신이 줄 떡은 곧 십자가를 통해 주실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자신이 십자가를 통해 주실 생명의 떡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기적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기적만을 추구하면 세상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일한 영생을 주는 위대한 기독교가 기복을 추구하는 하등종교 ‘기복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그 생명, 예수님이 몸 찢고 피 흘려 주신 그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며 사십시오. 여러분을 충성스럽게 여기시고 맡겨주신 그 직분을 기억하며 사십시오(딤전 1:12)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