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장 46-54절 | 최병희 목사]
오늘 표적이 일어난 시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유월절입니다. 예루살렘성 안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명절을 지키다 보니 시끄럽고 붐빕니다. 이런 때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가십니다. 베데스다의 뜻은 은혜의 집, 자비의 집 그런 뜻입니다.
그곳에는 눈먼 사람들, 다리 저는 사람들, 중풍병자등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예수님께서 딱 한 사람 서른여덟 해 동안 누워있는 병자에게 찾아가십니다.이 병자는 10년 20년도 아니고 무려 38년을 누워있었으니 평생을 누워서 지낸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전도는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내 주위에 있는 육체적, 마음적, 영적으로 병들어서 못 보고, 못 걷고, 못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시선을 돌리며 찾아가는 것 여기에서 전도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38년 병자를 찾아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에 병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내용은 원래 성경말씀은 아닌데 전체적인 본문의 내용이해를 위해서 첨가했기에 괄호를 쳤습니다. 물이 동한다는 것은 자연석을 깎아서 빗물을 받아놓은 것을 물이 차면 인공으로 만든 다른 연못에 물을 공급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물이 올라오는 것이 천사가 내려와서 목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때에 먼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고침을 받는다고 하여 병자들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뛰어들지도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다 보니 이 환자의 마음은 굉장히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에 소망을 주시고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 질문에 그가 “아 나도 나을 수 있어!” 하는 소망을 갖음으로 오늘 베데스다의 표적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고 했습니다. 이 거지는 “얼마나 주려나?” 하는 기대감 속에서 쳐다 보았지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면서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셨던 예수님처럼 “예수 믿으세요! 새 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천국의 소망을 갖고 싶지 않으신가요?” 여러분의 VIP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38년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신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십니다.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앉아 있고 누워있어서 그의 온몸의 뼈와 근육이 다 굳어있고 일어날 힘조차 없었는데 성령님께서 힘을 주시니까 그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 사람에게 여러 사람들이 수없이 물었을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 많은 병자들이 있었는데 왜 당신 하나만 고쳐주셨습니까? 그 사람이 감동 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한 것이오?” 그 질문에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한것이 없습니다. 그저 은혜를 받았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병자를 찾아간 예수님처럼 인생의 여러가지 절망의 상황으로 인하여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찾아갑시다.
찾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질문을 던집시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나요? 발걸음 무겁게. 이 세상 어디 쉴 곳 있나요? 머물 곳 있나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여러분 중에도 혹시 너무 힘들어 입술의 찬송을 잃어버린 분 계십니까? 너무 큰 무거운 짐과 고통으로 인해 웃음소리가 사라져버리진 않으셨습니까? 희망은 보이지 않은 채 길고 긴 절망의 터널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지시는 분 없으십니까? 베데스다 연못가에 수많은 사람 중에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찾아간 것은 그가 가장 절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절망이, 그의 한숨이 예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