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8-23 ㅣ최병희목사]
로마서 1장 1절부터 17절까지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복음입니다. 무려 7번이나 나옵니다. 16절을 보면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려면? 확실한 사랑의 고백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 대하여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했을 때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며 그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교회는 고백 공동체입니다. 분명한 고백을 해야 분명한 신앙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사람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일로 시험에 들어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다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내버려 두사' 라는 말이 나옵니다. 26절에도 나오고 28절에 한번 더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18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 때문입니다. 여기 경건치 않음은 하나님께 대함이고, 불의는 인간들에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막는다’ 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진리가 저희 속에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무시하고, 거절하고, 기피한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는 아무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려면 심판의 정당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 부당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슨 말이야! 벌써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 수 있도록 2중 기계장치를 두었다네. 자네 마음을 한번 봐봐! 대자연을 한번 봐봐" 이렇게 변증하실 것입니다.
19절에 보시면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마음에 신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미개한 민족일수록 오히려 종교심이 높습니다. 지능이 높은 동물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는데 지능이 낮은 장애인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양심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누가 매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벌 받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다 갖고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이미 심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 칸트는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양심의 도덕률이 빛나고 있다.” 그랬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양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자연만물을 통해서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그랬습니다. 만일 행성들의 고정된 운행괘도가 틀어져서 지구가 0.5도만 더 기울어지면 한쪽은 빙하가 되고 한쪽은 열대가 될 것입니다. 요즘 날씨를 보십시오. 40일 이상의 긴 장마가 지나가니 열대야가 기승을 부립니다. 이 더위도 잠시 후면 가을이 오면서 물러갈 것입니다. 이 대자연을 누가 섭리하고 다스리고 있을까요? 하나님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만한 보편적 지식을 주었는데 그것을 거부했기에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내버리심으로 어느 정도까지 타락할까요?
21절에 보면 “하나님을 알되” 그랬습니다.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져서 자꾸 헛된 것만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셨을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들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주만물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생각이 허망해서 이 우주는 빅뱅, 대폭발에 의해서 저절로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어떻게 됩니까?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사람을 앉혀놓고 썩어질 사람을 섬깁니다. 그러다가 새를 섬기고, 더 타락해 벌레를 섬깁니다. 사람의 모양을 가진 부처나 로마의 황제, 일본의 천황을 섬기는 것은 사람이니까 그런대로 봐줄만한대 새와 벌레의 형상을 만들어 섬긴다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확신만 한다면 사람들은 못 할 일이 없다“
그런데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하나님을 부정하며 살다보니까 생각나는 대로 모든 죄를 다 저질러서 이제는 성적인 타락까지 갑니다. 다른 이성에서 만족하지 못하니까 같은 동성에서 성적만족을 찾으려고 동성연애로 까지 타락합니다. 26절 말씀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로마의 15명의 황제들 가운데 14명이 동성연애자였다고 합니다. 로마의 역사학자인 타키투스는 “로마 황제의 최대의 고민은 성병처리였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미국교회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거부하는 교회들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교회의 소모임은 제한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의 축제는 서울시가 허락을 하였습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각종매체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런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AIDS입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결과가 이렇다! 라고 말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음의 양심과 대자연을 보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코로나로 죽음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이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가족과 이웃들에게 뜨거운 가슴으로 이 복음을 전하는 복된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Am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