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16ㅣ최병희 목사]
우리는 지난 시간에 로마서 1장 1절을 통해 바울이 자기 자신을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왜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종이 되었고 사도로 부르심을 입었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이다” 라고 소개하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복음의 기원에 대하여 말합니다. 누가 예수그리스도를 보냈습니까?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누구를 통하여 보내셨습니까? 선지자들을 통하여. 어떻게요?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사도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설명하기 앞서 복음의 기원을 설명했는데 “이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구약의 예언자들로 말미암아 약속되고 기록된 것이다” 라는 것을 설명한 후 이제 본격적으로 그 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다. 그 예수가 누구냐? 3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도 사람이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증거는 성경에
①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분명히 족보가 나와 있습니다.
②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울기도 하셨고, 배 고물에서 피곤해서 잠을 자기도 하셨고, 배가 고파서 무화과나무에 갔다가 과실이 없으므로 저주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라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어도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인된 인간을 대신하여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려면 철저하게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느니라!" 우리를구원할 방법은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은 사람인 동시에 또 하나님이십니다. 4절을 보시면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신적 기원으로는 부활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만 했다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시기에 3일 만에 살아나셔서 부활하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로마에 가기를 그렇게 원했던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어떻게 하든지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절에서는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13절에서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윈치 아니하노니.
15절에도 보면 "할 수 있는대로"
다시 말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달려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6절에 보면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들이고 8절에는 그들의 믿음이 온 사방에 소문이 났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좋은 자들인데 바울이 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까?
학자들은 이단이 난무한 초대교회에 그릇된 복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방적인 의도에서 그랬다. 죽음이 임박함을 알고 유언적인 의도에서 그랬다. 그 당시 세계제일의 도시인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면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각 나라로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이기에 전략상 의도에서 그랬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목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로마교인들이 복음을 다시 들을 필요가 있어서 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로마교회는 적어도 2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교회입니다. 로마교회 안에는 첫 사랑의 감격과 믿음의 열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8절에 보시면 ‘먼저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보면 바울은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그랬습니다. 그 신령한 은사가 15절을 보니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생활을 잘하는 로마교회 교인들 같았지만 바울의 눈에는 그들이 다시 복음 앞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흘렸던 첫 사랑의 뜨거운 눈물이 메말라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책망처럼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울지 않는" 아무런 감사와 감격과 눈물도 없는 화석처럼 메마른 심령은 아니십니까?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나는 다 안다”고 귀를 막지는 않으십니까?
생명의 삶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 “내가 뭘 또 공부하느냐”고 귀찮아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루 3끼를 평생 먹습니다. 그동안 많이 먹었으니 그만 먹자고 하는 분 없습니다.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보고 또 보아도 지겹지가 않습니다. 재미있는 노래는 평생을 불러도 좋습니다. 재미있는 운동은 매일해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살리는 복음!
이 나라와 이 민족과 온 세계 열방을 살리는 이 복음은 사모하지 않으십니까?
왜 복음 앞에 그렇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입니까?
우리가 매일 먹는 밥처럼, 먹고 또 먹어도 먹고 싶은, 십자가의 복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매일 하는 운동처럼 매일 부르고 또 불러도 감격이 사라지지 않길 축복합니다.
주여, 우리의 가슴이 24시간 예수님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매일 들어도 좋은 예수님의 복음
감사합니다~^^
복음을 올바로 깨닫고 알아서 믿음의 기초가 견고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복음이 소망입니다. 할렐루야~~♡
복음을 사모하겠습니다.
지독한 소경인 제가
매일 복음으로 돌아가
복음의 안경을 통해
세상과 나와 상황과 말씀을
바로 보기 원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