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5:25-34ㅣ최병희 목사 ]
오늘 본문은 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인의 치유이야기 입니다.
이 혈루병은 피를 쏟는 병으로 그 당시의 의술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입니다. 이 병을 고쳐보려고 그 여인은 양방, 한방, 민간요법등을 다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있는 재산도 다 없어지고 병도 더 심하여 졌습니다(26절)
그런데, 이 때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됩니다(27절) 이 여인은 율법적으로 부정한 여인이기에 무리 속에 들어가면 무리를 부정하게 만들어서 돌로 쳐도 율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하혈을 하여 빈혈증세가 있었을 것입니다. 더우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예수님 가까이에 가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의 마음가운데 간절한 열망이 생깁니다. “내가 무리들에게 돌 맞아 죽어도 좋아! 내가 무리 속에서 넘어져 밟혀 죽어도 좋아! 어짜피 나는 가만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몸, 예수님께 나가면 고침받을 수 있으니까 한번 가보자”
그래서 군중들 속으로 들어갔으나 예수님을 만질 수 없어서 옷가에 손을 댑니다. 그 당시 고대 근동에서 랍비같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거리를 다닐 때 겉옷을 하나 더 입었습니다. 그리고 겉옷 귀퉁이에 수(청색실 끈)를 달게 되어있었는데 이 여인은 지금 그 옷술을 만진 것입니다(눅8:44) 그런데, 만지자 마자 어떤 사건이 일어납니까? 29절을 보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순간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30절에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를 볼 때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갔기 때문입니다.신약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이 옷가가 ‘카나프’입니다. 이 단어가 말라기 4:2에서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에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치료의 광선이 나가서 그 여인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에 수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밀었다(31)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은 이 여인 혼자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이 여인만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을 할까요? 여러 사람들이 손을 댓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이 터치할 때 전혀 다른 종류의 터치를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물으십니다. 이 여인은 다르게 만진 거예요. 정말 간절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만진 것입니다(28절)
예수님은 이 믿음을 축복하시고 치유를 선포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절)” 신구약 성경 중에 유일하게 나오는 딸아! 라는 표현을 통해 너무나 따뜻한 예수님의 사랑과 격려를 느끼게 됩니다.
지금 이 땅에는 수 많은 문제로 아픔과 고통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혈루병 앓는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로 나갔던 것처럼 여러분이 예수님을 소개 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과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게 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목장과 교회와 담임목사님에 대해 너무도 많은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롬 10:14에 보면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랬습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듣지 못했는데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내가 만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전하시되 적당히 말씀하지 마시고 간절함과 절박함을 가지고 전하시기 바랍니다. 7일을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한 다윗처럼, 사형선고를 받고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던 히스기야처럼, 유다백성을 살리기 위해 3일 밤낮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에스더처럼 그렇게 주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하며 절박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전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곁에 수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오직 혈루증을 앓던 그 여인 하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여인의 간절함이 가장 컸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16:9에 보면 오늘도 우리 주님은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누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있는가? 누구에게 능력을 베풀어 줄까? 누구에게 기적을 줄까?
여러분 1세대 성공한 CEO들을 보면 대개는 시골 출신이고, 이북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왜요? 그들에게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맨바닥에서 맨손으로 일어나야 했기에 “적당히 하다가 안되면 그만두지!”가 안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 스펙 좋은 사람만 뽑았습니다만 지금은 누구에게 절박함과 열정이 있는가?를 본다고 합니다.
표정 연기하는 영화배우 짐 캐리가 아버지에게 1,000만 달러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그것을 지키고자 천만달러 짜리 수표를 써서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3년 안에 꼭 천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겠다고 수시로 다짐을 합니다. 드디어 1995년 추수감사절에 그 소원을 이루게 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코미디의 원천은 절박함이었다. 나는 누구를 웃기지 않으면 그날 밥을 못 먹었다. 이거 아니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창조력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을 때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 시간 나도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병이 나으리라! 나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그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리라!” 기대감을 갖고 주님께 나아갑시다.
어떤 모습이라도 괜찮습니다. 혈루증여인과 같이 실패와 좌절의 모습이라도 괜찮습니다.하나님 보실 땐 실패가 죄가 아니고, 병듦이 죄가 아니고, 포기가 죕니다. 다시 힘을 내서 부르짖읍시다. 다시 힘을 내서 주님을 찾읍시다. "주님, 나를 살려주세요! 주님, 나를 고쳐주세요! 불쌍히 여겨주세요!”
절박한 여러분의 믿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절박함'이란 '내 상황이 너무 긴급하다' 라는 면보다 '오직 주만 바라봄'과 더욱 비슷한 의미로 와 닿았습니다. 여러 곳에 분산투자하면서 그 중 하나로 기도를 생각하기에 절박함이 끌어올라오지 않는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어떤 교회보다 성령님의 치유와 해결의 역사가 활발히 일어난 우리교회에 앞으로도 더욱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왕성히 일어날 줄 믿고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