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12-19 ㅣ김남수목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기까지 3일 동안 무덤에 계셨던 그 기간에 영원하고도 놀라운 위대한 역사가 창조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도전을 감행하여 그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외면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사탄이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아가긴 지 3일 째 되던 날에 획기적인 하나님의 대답이 사탄의 도전에 대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예수님의 부활이 영원하고도 가장 위대한 새로운 역사 창조의 계기가 되었을까요?
그 해답을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가 갖는 세 가지 의미를 상고하므로 알아보겠습니다.
I,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죄값을 완전히 청산하셨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인간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마음속에 있는 죄의 문제로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인으로 창조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선하게 창조하셨는데, 어떻게 죄가 이 땅에 들어와 인간을 괴롭히고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는 일을 할까요?
성경은 이유에 관해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2: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꼬임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옛날 아담과 하와의 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느냐고 물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타락한 후 자녀를 낳을 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자녀를 낳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은 자녀를 낳았던 것입니다.
아담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영이 죽어 마귀의 자식으로 변한 모습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그의 자손들이 아담의 형상과 모양대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피가 자자손손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롬 5: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다 사망 아래 있으며,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죄값으로 말미암아 죽고, 영혼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죄와, 자신이 매일 매일 짓는 자범죄에서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줄 것인가는 우리 인류의 절박한 문제인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죄값을 청산하셨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석가나 공자와 마호메트 철학자들도 다 죽어서 무덤을 남겨 놓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진실로 우리 죄값을 갚았다면 죽음도 이겨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값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다 갚았다는 보증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고전 15:17절에 보면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자신의 죄값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시며 같이 만나 이야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므로, 우리가 지은 죄와 죄값을 남김없이 모두 청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죄 대신 영원한 용서와 의로움을 주셨습니다.
의로움이란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상태를 말하며,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이 설 수 있는 자격 마귀가 참소할 수 없는 자격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의로움으로 입혀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다 짊어지시고 속죄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신 증거로 소망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같은 소망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소리를 높여 이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I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영원히 멸하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절대적인 공포를 주는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더 살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우리는 먼지와 티끌로 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직면하면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주신 분은 예수님 외에는 나타난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공생애 기간 동안 죽은 자를 여러 번 살리셨습니다. 회당 장 야이로의 죽은 딸과, 나인 성 과부 독자와, 죽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시체가 부패하여 냄새가 나는데 예수님께서 무덤의 돌을 옮겨 놓게 하시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시니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 온 몸이 베로 동여 매인 채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공적사역 기간 동안 죽은 자를 살리시므로 당신이 사망의 세력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죽음을 친히 짊어지시고 돌아가셔서 사망과 싸워 부활하시므로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사망을 이기셨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계 1:17-18절에“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진실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격파하시고 부활하셨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합니다.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 오늘날 사실 여부를 우리는 증명할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부활 승천 하신 이후,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 2000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주님 앞에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고 계십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2, 33)
지난 월요일 세미나 기도시간에 성령이 임하여 사람들이 죄를 울부짖으며 눈물로 회개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이 바람같이 임하는 것을 느끼고, 병이 치료되고, 성령의 권능 아래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큰 힘을 얻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본 교회에 돌아가서 저녁에 기도회를 하는데, 성령이 임하시어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방언을 말하고, 병이 치료되는 일이 일어났다고들 전화로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구원 받은 성도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예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증거의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영이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과 저에게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죽음 저 건너편에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부활의 생명은 우리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란 우리들이 육신의 장막 집을 벗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입문에 불과하므로 우리들에게 영원한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부활하심은 부활의 영인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사망을 이기고 극복하는 능력을 채워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은“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전 15:54)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죽이려고 다가오는 마귀의 세력을 삼키고 우리로 하여금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III. 예수님의 부활로 마귀는 영원히 패배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인류 생활 속에 들어 와 있던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인간을 부패시킵니다. 마귀는 인간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도록 언제나 인간을 시험하고 혼미케 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파멸당하도록 하는 것이 마귀의 일이고, 마귀는 우리 속에 정욕을 일으키게 하여 정욕의 포로가 되어 끌려 다니게 합니다.
누가 이러한 마귀의 올무에서 우리를 놓아 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마귀는 죄값으로 인류를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죄로 아담과 화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자, 그보다 먼저 쫓겨났던 사망의 원수 귀신에게 잡힌 것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최대 최후의 무기로 삼고 인류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자 마귀는 예수님을 멸하기 위해 최대 최후의 무기인 사망을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면 자기가 이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죽으시므로 마귀의 무기인 죄를 없이 하시고, 사망의 세력을 깨뜨리시기 위해 죄 없는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마귀의 무장을 해체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마귀는 패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마귀는 무장이 해체된 존재입니다. 이빨이 빠지고 발톱이 빠진 사자와 같습니다.
큰 소리만 칠뿐 실제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킬 수 있는 능력은 모두 빼앗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모든 실권을 빼앗고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영의 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1서 4:4) 오늘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마귀보다 훨씬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의 생활과 운명에 다가 온 어떠한 문제라도 대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나의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므로 나의 안에 있는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를 대적하노라”
이것이 원수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철학이나, 인간의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 악의 세력인 마귀를 이기는 문제를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권세와 능력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주셨고, 주를 믿는 성도에게 하락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다시 죄의 포로가 아니고, 죽음 사망에 정복당하는 자가 아니며, 마귀에게 짓밟히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이기고, 죽음을 극복하고, 마귀를 이기며, 이 땅에서 영원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하여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