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26-40 | 김남수 목사]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빌립은 사마리아에 성공적으로 전도를 끝내고, 주의 사자의 인도를 받아 가사로 가는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전도했습니다. 그것은 빌립이 생각지도 못했던 큰 수확이었습니다. 본문 26-27절에“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라고 합니다. 복음은 이때 벌써 멀리 아프리카 에디오피아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에디오피아인은 인종적으로 말하면 흑인입니다. 이때 벌써 아프리카 흑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I.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교전략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교전략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1)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자기들끼리만 예수 믿고 좋아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박해를 통해 흩어버리셨습니다.
사마리아로 피신 간 사람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피난민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하나님의 전략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교하지 않고 구원 받고 좋아만 하고 있으면, 어려움이 와 흩어버리게 되는 것 입니다.
2) 또한 하나님의 전략은 에디오피아 사람이 순례 차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습니다.
순례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이 사람을 붙들고 빌립이 선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여행자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 됩니다. 비록 내가 아프리카에 가지는 못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아프리카 사람이 여기에 왔다고 합시다.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제 그가 예수를 믿게 되면, 내가 아프리카에 안 가도 그 자체가 선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 믿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선교에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나라에 여행 오는 사람들을 특별히 잘 대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함으로써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유학생이 많이 옵니다. 유학생 가운데 똑똑한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어 공부시키며 교회에 다니게 하여 예수 믿게 하면, 그 사람은 돌아가서 저절로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참으로 효과적인 선교입니다. 우리가 가서 서툰 말로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여러분 여행자가 중요합니다. 그 사람을 잘 대접하여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 중국교포들이 돈 벌러 많이 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잘 대접하므로 예수 믿고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중국에 복음이 전파되어 결국 기독교 국가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이러저러한 일로 가정부로 중국 교포들을 데리고 있는 집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가정에 들어와서 일함으로 더불어 예수 믿게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선교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쓰지 말고 그들을 가정부로 데려오세요. 일을 시키기도 하지만,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예수를 똑바로 믿고, 성경을 배우고,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중국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는 것 보다, 그다 가서 하는 말 한마디가 훨씬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가정에 혹 가정부를 쓴다면 중국 교포를 쓰십시오. 선교적인 목적으로 말입니다. 그에게 잘하고,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굳건한 신앙인이 되어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이로써 엄청난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중국 교포들 가운데는 중국말을 잘하고, 한국말도 할 줄 압니다. 그러니 중국사람 16억을 상대로 선교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선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높은 선교 전략을 빌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여행자에게 전도하라, 여행자를 믿게 하라, 여행자를 붙들라, 그러면 그를 통하여 선교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효과적인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빌립을 통해 보여주신 선교 전략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것은 최고의 선교 전략인 것입니다.
3) 복음 전파의 전략은 간혹 우리는 이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집을 옮겨서 이사할 때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을 붙들고 전도하십시오. 이사 짐도 날라주고, 주위 시장이나 환경도 소개해 주고, 친절을 베푸십시오. 전도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왜요? 이사할 때는 사람의 마음도 좀 변하거든요. 평소 티격태격하는 부부라도 새 집에 이사 오면‘이제부터 좀 새롭게 살아보자’하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 마음이 좀 있을 때‘제대로 살려면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해야지 마음이 잔뜩 닫혀 있는데 대고‘주 예수를 믿으라.’해봐요. 당연히 어렵지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여행자의 마음은 열려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행자의 마음은 open mind.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행자에게 전도하라 하는 것입니다.
4) 본문 27절에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하나님의 또 다른 선교전략이 나타나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고관입니다. 내시라고 하니까 거세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마는 궁중재정관리 장관을 내시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궁중재정관리는 직책이 높은 고급관리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지만, 권세 있는 자의 역할이 선교적인 차원에서는 더욱 큽니다. 회사로 말하자면 직원 하나가 예수 믿는 것과 사장이 예수 믿는 것과는 그 영향력이 다릅니다. 군대는 사병이 예수 믿는 것과 장교나 사단장이 예수 믿는 것과는 그 영향력이 다릅니다. 사단장이 예수 믿으면 그 사병이 예수 믿는 것과는 그 영향력이 다릅니다. 사단장이 예수 믿으면 그 사단의 군목 전체가 원활하게 돼요. 전도의 문이 환히 열립니다. 그러므로 선교 전략으로 볼 때는 귀족이 중요하고, 유지가 중요하고, 고관이 중요하고, 삼위권좌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권위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권력자가 예수 믿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도 아프리카는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족마다 추장이 있는데, 그 추장 하나기 예수 믿으면, 그 온 부족이 다 예수 믿고 다 세례를 받습니다. 아무리 밑에 있는 사람이 믿어야 소용이 없습니다. 거기 추장이 있는데, 추장 하나가 예수 믿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 고관이 예수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로써 선교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인의 선교의 2 번째 의미는
II. 이제 선교의 주도자는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본문 29절에“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본 절에 나타나 있는 대로 성령이 선교의 주도자입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26)”고 말씀합니다. 광야로 가라고 하니 이 빌립이 광야로 갑니다. 다시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병거로 가까이 가라(29)”다음으로 “병거에 올라 타라”, “이 사람에게 전도하라”고 거듭 명령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주도하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빌립을 강권적으로 붙드셔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를 사용하셔서 선교 사역에 쓰십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누구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선교사가 아닙니다. 참 선교사는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거기에 고용되어 있을 뿐입니다. 쓰임 받고 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의 자격이나, 실력이나, 그 사람의 지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사람을 쓰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선교를 온전히 주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입니다.
동시에 그 주도하시는 성령의 역사 앞에 빌립은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광야로 가라하니 광야로 갑니다. 병거 탄 사람에게 가까이 가라하니 가까이 갑니다. 이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성령께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병거에 탄 사람은 에디오피아 고관입니다. 중요한 인물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 한 사람이 병거에 올라 광야를 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일행은 70 명은 족히 넘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광야를 지날 수 없습니다. 강도가 많고 맹수도 많습니다. 음식도 중간에 먹어야 하고, 밤에 광야에서 잠도 자야 합니다. 그러니 고관이 여행하는데 적어도 70 명이 동원되었겠지요. 국가원수가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사절단이 대동합니다.
그런데 지금 빌립이라는 사람이 그 병거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첩자로 몰려 체포되어 십상 죽기마련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명령하여 가까이 가라하니, 병거 가까이 갑니다. 병거에 올라타라 하니 올라탑니다. 이것이 담대한 놀라운 역사가 아닙니까?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지시하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빌립이 만난 에디오피아 내시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가까이 가라하시니 가까이 갑니다. 그래서 가까이 갑니다. 이것이 선교에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만남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는 고급관리인데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전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왕족은 솔로몬의 후예로,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때, 애굽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보기 위해 찾아왔다가 돌아와서 솔로몬의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후예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왕족은 솔로몬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 종교를 믿고, 히브리 문화를 향유하고, 그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병거에 앉아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중 입니다. 본문 28절에“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고 합니다. 그는 왕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귀중한 인물입니다. 바로 그 사람에게 빌립이 전도하므로 그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교회사에 나오는 대로, 그 내시가 에디오피아에 돌아가서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지금도 그때 세운 교회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빌립의 선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에디오피아에 2000 년 동안 교회가 이어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 마음을 열게 한 것도 성령께서 하신 일이요, 전도하게 한 것도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30 년 전에 전인치유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한 것도 성령께서 하게 하신 것이요, 이번 전도지제작도 성령께서 그 마음과 메시지를 주셨고, 지금까지 제작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III. 세 번째 전도, 썬교의 의미는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말씀에 대한 이해입니다. 30-31절에“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빌립이 병거에 가까이 가보니, 에디오피아 내시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먼저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지금 내시는 뜻도 모르는 데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뜻을 몰라도 읽어야 합니다. 다 알고 읽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읽다 보면 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읽다 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읽다 보면 성경이 내게 말씀해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꾸준히 자꾸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어 말씀을 많이 마음에 가지게 되면, 말씀이 능력이 되고 말씀이 분별의 지혜가 됩니다. 빌립은 성경을 읽고 있는 내시에게 “읽는 것을 깨닫느뇨?”묻습니다. 그러자 그가“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지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산 속에 들어가 혼자 성경을 읽다가 내려와서 내가 메시야다 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읽고, 읽고 가르침 받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겸손히 기도하면서 읽어야 하고, 겸손하게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혼자서 읽고, 혼자서 제멋대로 해석하면, 이것은 위험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읽고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내시처럼“병거에 올라앉으세요.”하는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IV. 마지막으로 전도와 선교는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기독교인의 의미입니다. 선교는 결론적으로 예수 믿게 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언제부터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는가?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때부터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32-35절에“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그 내시가 빌립에게 대답하여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2절)”라는 말씀을 다 읽고 나서, 내시가 빌립에게 “그가”누구냐고 묻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철학을 도덕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약을 보든 구약을 보든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면,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압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압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지고,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살려주는 영, 영생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죽으시기까지 나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 순간부터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내 자신이 내가 스스로 내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온전한 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를 죄 없는 인간으로 보내 예수님께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옮겨 얹으심으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 의인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죗값을 대신 다 갚으셨으므로 더 이상 사망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으셨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므로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이심을 온 천하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 생명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이해하고 믿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 영원히 지옥에 떨어져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죄를 깨끗이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얻으며, 하나님의 본성인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봅니다. 빌립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 예수를 믿는 그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6절에“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당장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공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동일시되는 상징으로 물을 뿌리거나, 물속에 잠기고 물박으로 올라오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공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로 교회의 정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 전략을 상고함으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셔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죽게 하셨고, 이제 예수 믿는 우리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빌림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에디오피아의 내시 궁중재무장관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빌립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깊이 생각하고 깨달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전도를 돕기 위해 전도 책자가 다음 주에 인쇄되어 나오는데, 이 전도 메시지를 이해하고 숙지하여 각자가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 로 인도해야 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다짐하여, 예수님의 증인, 전도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면서 축복합니다. 당신이 전도면, 선교의 주도자이신 성령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