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2-17 | 김남수 목사]
성령님의 별명이 보혜사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예수님께서“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보혜사란 위로자, 변호자, 해석자, 대언자 되심을 말씀합니다. 보혜사의 헬라어 원문은“파라클레토스(paravklhto")”인데, “파라(para)”는“곁으로”라는 뜻이고, “클레토스(klhtov")”는“부르다”라는 뜻으로 파라클레토스는 “곁으로 부른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보혜사란 옆에 한 인격자가 계시어 위로하고, 변호하고, 도와주고, 해석해 주고, 중보해 주는 분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정교육 방식을 보면 보혜사의 성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는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 주로 아버지가 매를 듭니다. 책망할 때는 반드시 때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고 방을 나가면 다음에는 어머니가 들어오시어 위로 합니다. “네가 잘못했으니 맞았지만 때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너 보다 더 아프시다는 것을 가르치며 사랑하기 때문에 때렸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지금은 이 매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크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 가지로 위로해 줍니다.” 보혜사의 역할은 바로 이 어머니와 같은 역할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매를 맞을 때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시어 매를 든 것이다. 지금은 실패하는 것 같지만 이 실패가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는 증거다. 저 십자가를 보라”고 십자가 안에서 징계를 설명해주고 위로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내 편에서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 주고, 변호해주는 분이 보혜사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보혜사 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고 변호해 주고 도와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행하게 되고 또한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첫째: 처음 보혜사이신 예수님
보혜사란 “돕기 위해 옆에 와 계신 분”이라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처음 보혜사 되심을 본문 16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처음 보혜사”는 예수님이요, “다른 보혜사”는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보혜사로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능에 힘입어 복음을 증거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후광을 업고 제자로서 활력 있게 할동했습니다. 이들은 “메시야”의 제자로서 긍지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에 이를 무렵 갑자기 예수님께서 “이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큰 충격을 받고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들에 의해 체포당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제자들은 그만 혼비백산해서 모두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시고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40 일 동안 제자들 가운데 11 번 나타나 보이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행1:4-5 절에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은 다시 한 번 무력감을 절감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자신들의 무력감을 철저히 고백하고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둘째: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
1.“다른”의 의미
예수님께서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이라는 말은 그 의미가 헬라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헤테로스(e{tero")”와“알로스(a[llo")”입니다. “헤테로스”는 예를 들면 식물과 돌덩이 이 두 가지가 서로 전혀 다른 것처럼 그 질과 모양, 용도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로스”는 동질, 동등, 용도가 같으면서 다른 것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동전 500 원 짜리 두 개는 모양도 서로 같고, 재료도 서로 같고, 사용 목적도 서로 같으나 개체가 서로 다른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르다고 할 때 바로 “알로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다른 보혜사”라고 하신 말씀의 다른 보혜사란 헬라어로 “알론 파라클레톤”(a[llon paravklhton)입니다.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처음 보혜사이신 예수님과 신성이 똑같으신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며 성령님이 바로 예수님과 똑같으신 분입니다.
(잠깐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해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은 성호 그 이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그 신성이 동등 동질이신 삼위가 똑같으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은 그 사랑과 능력, 지혜, 영원성이 똑같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어디나 계신 영원하신 전지전능하신 삼위 일체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성부와 하나이신 것을, 요10:28-30 에 “성자 하나님이신 당신이 성부 하나님과 하나라고 성부 하나님과 똑같으신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셨으며,” 또한, 베드로 사도는 행5:3-4에서 “성령님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똑같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은 신성이 동등 동질이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은 서로 인격이 구별이 되며, 존재 방식에 있어서 윤리적으로는 성자와 성령은 성부께 종속되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 종속되십니다. 그러나 신성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은 동등 동질이신 서로 구별이 안 되는 똑같으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므로, 성령과 예수님은 같은 분인 동시에 또한 인격이 서로 다른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다른 보혜사 성령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 입니다.
2. 다른 보혜사 성령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성령을 “자신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에는 본성이 똑같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님의 사역이 똑같으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이 하신 사역을 계속 하신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 죄인을 구원하시는 성령님
성령님의 사역 중에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일은 예수님만이 하신 일이지만, 성령님께서는 죄인이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믿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체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예수님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천국을 증거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는 날 예비 된 천국에서 우리가 주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증해 주시고 증거해 주십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이런 연유에서 예수님은 요14:12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신 그 사역을 변함없이 믿는 자를 통해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성령님은 “다른 보혜사”이신 것입니다.
2) 성령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십니다.
나아가서 성령께서는 우리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소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출 15:26에“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약 40%를 병자를 치유하는데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 막16:15-18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 치료가 나타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능력과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칩니다.
3) 성령님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냅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귀신은 개인, 사회, 국가, 나라 전체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부조리, 부패, 악한 일의 배후에는 악한 귀신이 있는 것입니다. 귀신과 부패와 부조리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복음 증거와 더불어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나10:1-8, 눅10:17-20).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의, 사랑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합니다. 귀신은 배후에서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와 악한 일을 조장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해서 이러한 것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성령운동이 일어나면 이와 같은 부조리와 불법과 부패의 역사는 쫓겨납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역사를 하고 계십니다.
4) 성령님은 예수 이름으로 마음속의 가시와 같은 부정적인 것을 제거하십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가시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냅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꽉 들어차 있는 사람은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생을 인도하는 등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어두워지면 모든 일이 다 어두워지고 삶의 방향조차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채우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을 낳고, 낭패와 실망은 언제나 패망만을 낳는 것입니다. 좌절감은 삶을 무력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마음 가운데 있던 가시와 같은 것들은 뽑혀지고 맙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으면 부정적인 생각 대신에 긍정적인 생각을, 파괴적인 생각대신에 창조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미움 대신에 사랑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눈에는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힌 것 없어도 불타는 용기와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삶을 힘차게 전진합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령 강림의 실상
예수님을 개개인의 영혼 속에 모시게 됩니다. 요16:7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몸으로 이 세상에 계신 것보다 부활 승천하심으로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당시에 살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이 떠나시고 성령께서 강림하시는 것이 더 유익하디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더 유익이 될까요?
1. 예수님을 개개인 마음속에 모실 수 있기 때문에 유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몸으로 이 세상에 계실 때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 마음속에 계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람과 같이 역사하시는 분이시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영혼 속에 오셔서 시간가 공간을 초월해서 영혼속에 계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2. 성령은 전 세계에 동시적으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실 때에는 몸의 제약 때문에 세계를 향해 동시에 전도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방에만 계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동시에 전 세계를 향해 전도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어느 곳에서나 바람처럼 자유자재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허리케인 태동같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그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초현대식 무기로도 성령의 역사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항상 북한 공산 집단의 도발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 남한은 북한의 핵무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공산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북 동포들의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그 효력은 나타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저들의 탱크나 대포, 전투기나 미사일, 핵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통해 이북 동포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북 동포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3.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이기신 십자가의 열매를 맛보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속량의 열매들을 맛보는 유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마귀와 질병과 저주와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이 되어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속량의 열매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어 체험하고 누리도록 하기 위해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더욱 담대한 마음으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모셔 들임으로 우리의 영이 깨끗해지고 성령 충만 받아 영원히 자유로운 풍성한 삶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4. 보혜사 성령님은 내적 천국을 맛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우리가 내적으로 영생 천국을 맛보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롬14:17에“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천국을 체험할 수 있게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을 주십니다. 이 때문에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은 고통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 영생을 얻어 천국을 맛보며, 여러 가지 불의와 불안과 슬픔을 극복하고 천국 백성으로서의 능력 있는 풍성한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하십니다.
5.보혜사 성령님은 우리가 주님을 닮아 변화되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또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시는 역사로 우리가 인격과 삶이 주님을 닮아 변화되고 성장하게 하시며 성령의 열매를 아름답게 맺도록 역사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엡 4:22-24 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며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고후 3:17-18절의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의 이 말씀처럼 주님의 형상대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6. 보혜사 성령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 성령께서 오신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앙의 승리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 충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의 능력, 기도의 능력, 신앙의 능력, 생활의 능력으로도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이러한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통해 위대한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되시는 성령님께서는 창조의 하나님과 구속의 예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교회가 성령님을 모시는가의 여부는 곧 생사 문제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죽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성령 충만을 받지 않는 성도는 살았다하나 죽은 자입니다. 이러므로 이 시대에는 불같은 성령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권능의 역사가 있고, 승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 땅에서 능력 있는 증인, 승리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 성령과 함께 영원한 하늘나라에 올라가
영원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