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1-4 | 김남수 목사]
5월은 늦봄이 가고 초여름이 다가오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늘과 땅 모든 숲이 싱그럽고 온통 파랗게 생명력이 충만하며 우리들의 가슴에도 기대와 사랑이 부풉니다. 그런가하면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오늘 우리 온 가정과 예봄교회 식구들이 이렇게 같이 TSA에 와서 야외 예배를 드리고 같이 놀이도 하며 게임을 갖고자 합니다. 장소를 제공하고, 여러 가지로 준비한, 천 사장님께, 최 장로, 조 장로 여전도회께 감사드리고 TSA가 날로날로 확장되고 온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원합니다. 즐거운 기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은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에서 키웁니다. 가정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해 갑니다. 가정에서 인간이 됩니다. 가정에서 보람을 찾습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다 가정에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남은 보람도 가정에 있습니다.
I. 오늘 본문은 자녀들에게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두 가지입니다. 순종은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순종은 기쁜 마음으로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성경 원문에 보면 사람에게 유일하게 쓰이는 말입니다. 공경은 특별한 말입니다. 공경은 사랑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곤경하란 - 높이 섬기라 이것입니다. 미국교회는 어머니 주일을 지킵니다. 어머니 주일을 지킬 때에 어린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중요한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하도 들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요한 실제적 교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은 어렸을 때 꿈이 뱃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원이 되고, 선장이 되어, 바다를 헤쳐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우선 선원이 되어야겠다고 짐을 꾸려 가지고 하인들과 같이 이제 배를 타러 나가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큰 뜻을 품고 집을 나가는 이아들을 말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울기만 합니다. 철철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것입니다. 워싱톤은 그 때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 어머니를 슬프게 하고,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쫓을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하고 ‘짐을 내려라’도로 짐을 풀어 놓고 어머니에게 순종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톤이 되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를 떠났더라면 그저 잘해야 선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큰 뜻을 품고 다 준비했던 것도 버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따랐습니다. 왜요? -어머니가 지혜로우니까요. 어머니의 인격을 높이고, 어머니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공경이란 그를 높이는 것이요, 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 어머니는 이런 분입니다. 그 분은 이렇게 훌륭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에 부모에 대한 긍지와 자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공경이란 대가성이 없는 사랑입니다. 공경해서 무엇을 받아 내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또한, 이 사랑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소원입니다. 그 소원에 응답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소원, 아버지의 기도, 그것을 알고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경입니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아니요, 그의 소원을 우선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선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소원은 의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부모님이 공부해라, 공부해라, 입버릇처럼 하지만 알고 보면, 거기에는 긴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제때에 공부를 못해서 이렇게 늘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런고로 너는 공부해라. 이런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 그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습니까? 간절한 소원이 있어요. 또한 부모님의 소원치고, 가장 큰 것은 건강입니다. 여러분 병들지 맙시다. 건강을 잘 지켜서 건강해야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지, 앓아누워 있으면 그의 부모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부모님 앞에서 탄식하고, 괴로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마음에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그의 소원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정직하게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효는 가정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습니다.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부모를 공경하면 형통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통계적으로 진리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이 오래 삽니다. 효도하는 가문이 장수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형통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가정적으로, 형통합니다. 이스라엘의 강한 점은 그 전승을 지키는데 있습니다. 전승의 뿌리는 효입니다. 공경 이것은 바로 인격의 뿌리입니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공경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 공경과 순종을 몸에 익히지 못한 사람은 구제 불능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의 『대요리 문답』에서 부모란 이런 것이다 하고 4 가지 부모를 말합니다. 1)낳아준 부모, 2)나를 가르쳐 준 부모, 3)나를 지켜준 왕 부모, 4)그리고 나의 영적인 생활을 지도하는 목사 부모,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네 가지의 부모 속에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 - 순종의 덕을 익히고서야 비로소 인격이 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됩니다. 이것이 가풍이 되고, 가문의 전통이 될 때,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됩니다.
II. 본문은 부모에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 본문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라”합니다. 양육이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먹이고,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십니다. 자라게 하시는 이, 이 생명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십니다. 자라게 하시되 우리에게는 부탁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먹이라 하십니다. 먹을 것을 먹입니다. 그래야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4장에서 말씀합니다.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4:19)” 양육은 해산의 수고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 절에는 기독교 교육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키가 자라며 - 육체입니다. 지혜가 자라며 - 지육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종교성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도덕성입니다. 마땅히 이 네 가지 측면으로 우리는 자녀를 양육하여야 합니다.
육체적인 것도 중요합니다. 계속 영양을 공급해야 합니다. 균형 있는 양육이 필요합니다. 잘 먹여야 건강합니다. 알게 모르게 영양이 불균형이 되고, 영양실조가 되어서 잘못된 일이 참 많습니다. TV 이만갑 프로를 보면 북한의 아이들이 못 먹어서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가 아닙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먹어야 할 것을 먹도록, 그래서 영양을 공급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 후 바비큐 파티 때 즐겁게 잘 먹으십시오. 먹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신적으로 많은 지식을 주어야 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보아야 할 것을 보고, 경험할 것을 다각도로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지능이 발달합니다.
또, 하나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진리를 체험하게 해야 됩니다. 경건을 보여주어야 하고, 기도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고, 함께 기도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낳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긴 노력과 수고와 희생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간단한 말이지만 자녀를 키우는데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으로는 노엽게 하지 말라 하였고, 긍정적으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하셨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 - 무슨 말씀입니까? 화나게 만들지 말라는 것 입니다. 가르친다고 하면서 자녀를 감정상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왜 감정이 상합니까? 분위기에 맞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를 잘못 택한 탓입니다. 생각 없이 나 나름대로, 명령 투로 나가기 때문에 분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빗나갑니다. 또한 이해 수준이 있고, 경험 정도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용히 기다리면서, 인내하면서 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고 급진적으로 하면 또 여기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새말로 “눈높이”맞추어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도 저들은 화가 납니다. 무엇버디도 우선적인 것은 “사랑의 확증”입니다. 사랑의 줄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 - 이것을 알면서부터 바로 교육은 교육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마십시오.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우선은 교육이 안 통한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존재를 인정하고, 믿어 주고, 참아 주고,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교육하라”말씀합니다. 교양이 무엇입니까? 주의 말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 지식으로가 아니고, 내 지혜로, 내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의 교양 말씀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거짓말하면 못 쓴다 거짓말하면 매 맞는다” 이렇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성경을 가져 오너라 몇 장 몇 절을 읽어라”하며 거짓말에 관한 성경을 읽게 합니다. 그런 다음 “어떡하면 좋겠느냐”묻고 “거짓말 하지 말아야 됩니다.”하면 “그렇다 성경이 말씀 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이렇게 가르칠 것이라고 합니다. 내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것으로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놓으면 앞으로 커서도 모든 문제를 성경에서 풀게 됩니다. 성경에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오직 성경 진리로 가르칠 것이지, 인생철학으로 가르칠 것도 아니고, 내 경험을 강요할 것도 아닙니다.
또 주의 교양과 훈계로 교육하라 하였습니다. 주의 훈계-주의 제자 훈련을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본을 보여주신 그 훈계의 맥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을 보여주고 그렇게 되도록 반복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보여주고, 신뢰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치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먼저, 선행의 본을 보여주고, 진리로 사는 본을 보여 주고, 봉사를 보여주고, 특별히 섬기는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섬기면서 기뻐하는 그런 생활의 본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믿음, 소망을 먹고 사는 것이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삽니다. “자녀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성경은 말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