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35-10:1ㅣ김남수 목사]
오늘은 예봄교회 창립 30주년을 맞는 창립기념주일 입니다. 예봄교회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시며 함께하신 은혜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 교우들도 여러 가지로 참 수고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은 우리교회 창립기념주일이라 여러분들이 다 알고 계시겠지만 지나온 날들을 회고하면서 예봄교회가 어떻게 세워졌고,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므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고, 앞으로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교회는 창세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성해 놓으신 구속의 은총과, 성령께서 사람을 고용하시어 복음을 전함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개척되는 것입니다. 저는 평신도시절과 신학교에 다닐 때 39살까지는 배우고 경험하면서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고, 40살이 되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기독학생회 활동과 성령운동을 했고, C .C. C의 여러 훈련, 네비게이토의 제자훈련, 전도폭발훈련, 토레이 신부님이 살아계실 때 강원도 황지에 있는 예수원에서 3개월간 공동체 생활을 했었고, 미국 남 장로교 로스 선교사님과 같이 예수전도 단을 설립하여 활동했으며, 교회사역 경험은 충현 교회 중등부 부지도와 대학부 지도, 남서울교회 청년부 지도, 그 외 직장 생활을 하는 등. 경험을 쌓았습니다.
저의 아내는 결혼 전 IVF 간사였는데, 필리핀에 가서 간사훈련을 받기도 했고, 번역선교 헌신자(GBT)였는데, 합동신학대학원 유영기 교수님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치유사역훈련은 제가 잘하나, 제자훈련은 저보다 아내가 더 잘 합니다. IVF의 여 간사들은 대부분 아내의 제자들이거나 친구들입니다.
남서울교회의 부목사로 있을 때 39살이 되자, 40살이 되면 교회개척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1985년 12월 말에 교회를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남서울교회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개척할 돈도 같이 교회를 할 사람도 없었는데, 남서울교회에서 2000만원을 3년 거치 2년 무이자 상환을 조건으로 빌려주어서 개척할 수 있었으며, 개척 후 다 갚았습니다. 1월은 추운 겨울이라 개척하기가 어려워 따듯한 3월 셋째 주일에 개척예배를 드리기로 계획을 세우고, 그때까지 3개월 동안은 교회개척준비와 기도원에 가서 기도로 준비하였는데, 그동안 남서울교회 사택에서 생활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남서울교회에 빚진 교회입니다. 홍 정길 목사님과 남서울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개척 당시를 생각해 보면, 그 당시 2000만원으로는 예배처소와 살집을 동시에 구할 수 없었는데, 초대교회는 집에서 예배를 드렸으므로, 우리도 그때 마침 목동아파트가 계발이 되어 값이 저렴하고, 또한 그 곳이 마음에 들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그 곳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거실은 예배실로, 2개의 방은 사무실과 기도실로 사용하고, 2개의 방은 우리 가정의 사용처로 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당시 45평의 전세가 2000만원이었으므로 개척이 가능해 기도원에 가서 한달 동안 기도하고 내려와 보니, 그 동안에 전세가 30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저희 부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지라 이삿짐은 다 싸 놓았는데, 병아리들처럼 방에서 부족한 1000만원을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45평 매매가가 6500정도 되었으니, 1000만원은 가난한 저희에게는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니, 개척자금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소식을 들은 가난한 집사님들이 10만원, 50만원, 300만원, 500만원. 등, 이렇게들 가지고 오셔서 헌금해주셔서 계약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목동에 와 잔금을 다 치르고 하나님의 은혜와 돕는 손길로 차질이 없이 교회를 시작할 수 있는 예배처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헌금하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분들이 다 많은 축복들을 받았습니다.
교회이름은 신약성경을 보면, 그 지역의 이름을 따 로마교회, 에베소교회, 서머나 교회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보고, 우리 교회의 이름도 서울에 위치하고 있기에 “서울교회”로 짓기로 했습니다.
교회 창립예배는 1986년 3월 16일, 3월 셋째 주일 오후에 목동아파트 128동 303호에서 당시 저의 은사이시고 합동신학대학원 원장님이신 박윤선 박사님께서 계2:8~11절의 말씀으로 “죽도록 충성하라“라는 제목의 설교로 축하하시면서 권면해 주셨습니다.
교회 사역철학은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많이 생각하였는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 하신 사역과,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몸인 교회에 위임하시고 부탁하신 일을 순종하여 이루어 드리고자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께서 비둘기 형체로 임하시어 성령의 충만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마9:35~10: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을 받으신 후, 각 도시와 마을에 다니시면서 하신 사역의 요약이 마9: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사역은 3가지로 요약이 되는데, 마9:35절을 보면,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병들고 연약한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권세와 권능을 주시며(눅9:1~2),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며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도록 파송하셨습니다(마 10:1). 이 말씀을 보고 우리교회의 사역철학을 *성령 충만한 교회 *가르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치유하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위와 같이 목동아파트 128동 303호에서 저와 아내와 어린 요한이 바울이 넷이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창립 2개월 만에 86년 6월 8일에 우리교회의 선교방향을 협력선교로 정하고, 안 지영(GBT) 선교사, 유 기남(OMF) 선교사, 그해 11월에는 정 철화(GBT) 선교사를 후원하도록 하나님께서 성장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아파트 전세계약기간이 1년이었는데 1년이 거의 다 되자, 주위 사람들이 집 주인에게 건의를 하므로, 주인이 나가라고 하여 섭섭하지만 514동 803호를 얻어 이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사한 803호 아래층 주인이 파리공원 옆에 절이 하나 있는데 그 절의 총무인지라, 우리가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경찰서에 민원을 내고, 주일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도록 지키고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므로 3개월간 우리 교우들의 이집, 저 집으로 주일날 장마철이라 비는 오는데 돌아다니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1987년 6월14일 예배장소를 아가페출판사 정 봉석 장로님과 의사 김성기 집사님의 도움으로 목동아파트 2단지 일반상가 217호(64평)로 예배처소를 옮기게 되었고, 그 당시 그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1998년 9월에는 40평을 더 넓혀, 217호 218호 도합 104평에서 판교 이곳으로 예배당을 지어오기까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성도들의 여러 신앙훈련을 성서대학, C.C.C 10스텝, 그리고 네비게이토에서 나온 2:7시리즈를 가지고 제자훈련, 등을 했었는데, 그때 훈련받은 성도님들은 다른 교회 가서도 지도자가 되어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저희 교회의 비디오스쿨과 전인치유사역훈련에 기름을 부으시고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교우들을 중심으로 훈련을 했었는데, 목회자분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오셔서 1990년부터 95년까지 약 6000여명의 목회자분들이 참석하여 훈련받았고,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으며, 훈련받은 목회자분들이 힘을 얻고, 생각들과 신학의 입장이 바뀌어 변화 받고,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도록 하나님께 함께 하시며 축복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적으로만 볼 때는 목사님들을 사역하느라 교회를 잘 못 돌봄으로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치유는 금기사항 이였는데, 치유사역 훈련 그 후 오늘날은 보편화되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5병 2어와 같은 작은 교회지만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성경적으로 한국교회의 치유사역 회복을 위해 쓰셨다고 생각할 때 감사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목회자 치유사역훈련을 하면서 우리 교우들도 함께 참 수고들을 많이 하셨고, 저도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1995년 7월에 과로, 공격과 비난 등으로 말미암은 마음의 깊은 상처, 중풍 등 여러 합병증으로 쓰러졌는데, 병원에서는 6개월 이상 못산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96년 9월까지 치유해 주시므로 목회를 다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치유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때, 우리 교우들과, 소원의 항구 이 옥희 원장님과 최 경자 권사님이 많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일 낮 예배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장 서울대선배인 김 영한 박사님께서 인도해 주셨고, 밤 예배는 선교사님들이 안식년으로 들어와 계셨는데 수고해 주셨으며, 수요 기도회는 김 영숙 전도사님이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담임목사가 쓰러져 죽을지 살지 모르는데, 교회를 떠나지 않고 지키셨습니다. 수고들을 참 많이 하셨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하나님과 우리 교우들이 생명의 은인이요 교우들에게 빚진 자 입니다. 저의 아내도 병중에 있는 저를 돌보느라, 어린 두 요한이 바울이, 교회를 돌보느라 수고 많이 했습니다.
그 후 2001년 초에 조 광희 집사님과 김 형대 집사님이 김포의 장기리를 다녀와서 우리도 예배당을 건축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목사로서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말은 못하고 기도만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해 4월에 건축위원회의 조직을 재정비하고 확장했습니다. 이제 예배당을 건축할 때가 되었나 보다 생각하면서, 김포에 좋은 땅이 있어 주인 할머니를 만나 계약하려는 데 그분의 사위가 전날 교통사고로 입원하여 계약하러 나올 수 없어 계약약속을 미루게 되었는데, 또 계약약속한날 이번에는 할머니가 쓰러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김포는 막으시는 것으로 생각이 되어 김포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중고차를 한 대 사 교회개척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습니다.
성도님들이 판교로 가자고 해서, 2001년 7월에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261-5번지의 엘림교회 대지 243.8평(지목, 종교용지)을, 교회재정 오억 이천 칠백, 예수사역훈련원에서 구천 팔백을 빌려, 육억 이천 오백에 계약하여, 우리 교회 성전부지로 매입했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판교 서울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힘들었지만 예배당을 건축한다는 기쁨에 주일마다 성도님들과 함께 판교에서 개발공사가 시작될 때까지 오후 예배를 판교에서 계속 드렸습니다. 때로는 불고기 파티도 판교에서 하며 즐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2004년 10월에 장로 4인, 안수집사 5인, 권사 6인을 선출하여, 2005년 5월 29일 목동 CBS 기독교방송국 강당에서 임직 식을 거행했습니다. 2005년 8월 6일 당회가 조직되어 이제는 미조직 교회가 아니라, 정식 조직교회가 되었습니다.
2005년 5월 7일에 제가, 미국 리전트 대학원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기반으로 한 치유사역훈련 모델”(A Model of Healing Ministry Training Based on Jesus' Ministry)를 주제로 졸업논문인 목회학박사논문을 썼는데, 최우수 박사논문상을 수상했습니다. 제가 학위를 하게 된 동기는 박사가 되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목회자 치유사역훈련을 하면서 너무 어려움을 많이 당했고, 청문회 등, 심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친 내용이 성경적으로, 교회의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아주 강해서였습니다. 박사논문의 프로젝트는 제가 목사님들에게 4기와 5기에 가르치고 훈련했던 내용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미국 리전트 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님들이 제 논문을 보고, 선교와 교회성장에 너무 중요하다고 인정을 해, 최우수 논문상을 수여했습니다. 저의 논문을 평신도들이 알기 쉽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사역”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을 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논문을 제가 쓰기는 했지만 우리 교우들과 공동작품입니다. 자료들은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하여 성도들이 그것을 듣고 종이에 받아서 써 그것을 제게 주면 그 자료들을 짧은 시간 안에 정리하도록 교우들이 도와주었고, 최 철영 장로님과 김 미연 권사님이 엑셀로 데이터를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전 우윤 집사님과 저의 아내가 컴퓨터를 도와주어서 그 많은 분량의 데이터들을 짧은 시간 안에 통계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2008년 10월에 “성령사역과 전인치유사역 훈련교안Ⅰ”의 발간과 훈련교안을 PPT의 CD로 최 장로님이 삼성에서 훈련 내용을 변개시킬 수 없도록 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전인치유사역훈련 세미나를 목회자분들을 대상으로 다시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어려웠지만, 6일 동안은 기도원에 가서 저의 질병 치료와 교회건축을 위해 기도하고, 주일날은 교회에 와서 사역을 하면서 연약한 몸이지만 교회건축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그때, 고 조용현 장로님이 건축위원장으로 수고를 참 많이 하셨습니다. 2007년 4월에 한국토지공사와 성전부지 토지계약을 체결하고, 2009년에 분당구청으로부터 성전건축공사 허가를 받았는데, 건축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는 성남시가 주차공간을 건교부의 기존 주차공간의 250%~400%로 확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요구조건을 충족시키려면 지하 8층을 파야하는데,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되어 한국토지공사와 성남시에 민원을 냈지만 안 받아들여져서, 다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냈으나 이도 또한 반려되었습니다. 교회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생각 끝에, 전에 서울시장 이셨던 고 김상철변호사를 우리 교회의 대리인으로 세워, 다시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냈는데, 권익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하여 우리 교회의 민원을 그대로 받아들여 건교부의 원래 법을 적용하도록 환원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설계를 변경시키지 않고도 교회를 건축할 수 있게 되어 2009년 11월 15일 이곳에서 예배당건축기공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물론, 이 지역 교회들과, 앞으로 한국교회가 교회건축을 하는 데 주차 공간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될 큰 걸림돌을, 즉 앞으로 교회들이 교회건축을 하는데 수천억을 절약하게 되는 일에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를 사용하셨습니다.
2009년 11월 22일 우리교회 예배당 주소가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585-1로 결정되었습니다.
2010년 5월 30일 교회 이름을 서울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의 제안과 투표와 당회를 통해 기존의 “서울 교회”를 “예봄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예봄이란?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기적으로 예봄 이가 태어나도록 하셨는데,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살아 역사하심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예봄 이의 이름을 따 예봄 교회라 했습니다.
2011년 5월 1일 이곳 판교에 그렇게 꿈에 그리던, 새 성전의 입당예배와 안수집사 4인, 권사 7인, 임직 식을 거행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그간 성전건축을 하느라, 몸과 마음과 정성과 시간, 그리고 기도와 물질과 재능을 받쳐 어려운 중에도 최선을 다해 참 수고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특히 박동성 집사님과 최 영미 권사님 부부, 어린 주호는 옆에 쓰레기 더미가 있고 비가오면 마당은 물바다가 되는데, 우리 교회를 위해 판교 옐림교회 사택에서 쓸쓸이 외롭게 일여년간 생활하시느라 아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우들의 수고한 것을 다 보셨으므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과 이 땅에 속한 기름진 것으로 넘치게 풍성히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전건축을 마치고도, 하나님께 성전봉헌을 못했는데, 봉헌에 힘을 합한 분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하는 사업과 직장, 하시는 일, 자녀들이 잘되고 형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일여연간 준비하고 4개월 정도 셀 교회에 관해 설교한 다음, 2012년 8월 30일에 셀 교회로 전환했습니다. 구역의 명칭을 목장으로 바꾸고, 주일 오전예배를 축제예배로 바꿔, 일주일 동안 지친 심령으로 성도님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예배 전에 10시 25분부터 자모 실에 모여서 기도로, 본당에서 10시 50분부터 찬양으로 짐들을 벗고 심령을 준비한 후, 기도, 광고, 설교, 축도로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셀 교회로 전환하여 1205 여 목장이 최초로 테이프를 끊어 2014년 2월 15일에 번성예배를 드렸는데, 1205 목장의 목자는 김 인영 권사이고, 번성 목장인 1406목장의 목자는 최 윤아 권사입니다. 각 목장이 번성의 꿈을 꾸므로 계속 번성하여 번성예배를 드리는 일이 계속되기를 우리 모두 함께 간절히 바라고 소원한 줄로 믿습니다.
이제 교회건물도 지었고,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예배당을 봉헌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금년 우리교회 목표가. 1.전도하는 교회, 2. 기도하는 교회, 3. 성전건축 대출금 상환입니다.
교회부흥에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앞으로 전진 합시다. 우리 예봄교회 교우들이 모두 하나님나라의 용사들이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이곳까지 함께 오셔서 교회를 사랑하고 수고하신 우리 모든 교우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사랑과 칭찬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크게 축복하시기를 기도드리면서, 우리 모두 함께 서로 사랑하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모두 기뻐하시며, 교회성장과 부흥을 꿈꾸십시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