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4-36ㅣ김남수 목사]
120문도는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지상명령과 성령의 권능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으로 장소를 옮겨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이르매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베드로나 요한이나 사도들에게만 성령이 충만히 임한 것이 아니라 120명 모두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120명 모두가 성령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을 말하였으며, 또한 모인 무리의 수천 명이 모두 각각 자기들의 난 곳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을 좀 자세히 생각해 보면, 120 문도 모두가 각각 지상나라 말로 각기 다른 방언을 말했으며, 또한, 온 천하 각국으로부터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각기 자기 난 곳 방언으로“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이들이 듣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각기 다른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한 언어 한 민족처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된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복음전파의 초자연인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거기 모인 모든 무리는 자기 각 나라 말로 “하나님의 큰일”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한민족 한나라 백성들처럼 하나가 된 것입니다(엡2:12-19) 제자들은 갈릴리 사람으로 외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은 사람들이 아닌 불학무식한 어부들이었는데,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식한 구원의 도리를 유창하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오순절 사건은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인 무리가 이를 보고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면 세계적인 빅뉴스 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사건 속에서 비방이 있었고, 조롱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은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시기하는 사람, 비꼬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희가 새 술에 취했다”여기서 “취하다”는 말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능력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20 문도는 갈릴리 사람으로 거의가 어부출신이므로 세상학문이 없는 사람들인데 방언으로 그 자리에 모인 각 나라 사람들의 말을 하고, 유식한 구원의 도리를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듣고, 새 술에 취했다고 무시하며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36절 까지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인데. 14절에“베드로가 11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가 모두 서서 모두 설교를 하는 것처럼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11사도가 한마음 한영이 되어, 실제 설교한 사람은 대표인 베드로 한사람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성령이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영감 된 참으로 놀라운 설교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엽니다. 서론이 재미있습니다. 14절에“…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가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깜짝 놀라고 어리둥절해 당황하고 있지만, 내가 이 사건에 대하여 여러분이 이해하여 알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사건이 성경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경의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서적 맥락 안에서 이 사건을 바로 해석을 내리려고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베드로의 설교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오순절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성서적 해석이 있습니다. 그 성서적 해석 속에서 그리스도를 설명합니다. 나아가 그들에게 실천적 사항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시오. 설교 끝에 가서 명령을 합니다. 이것이 오늘 베드로의 설교 요약입니다.
15절에“때에 제 3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제 3시는 우리 시간으로는 대략 오전 9시 쯤 됩니다. 유대인들은 오전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전 9시에 술 취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이 사람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것은 바로 16절에 구약“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한 예언이 지금 이 시간에 성취되어 일어난 것입니다.”그러니 놀랄 일이 아니요, 당연히 있어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이다. 고 말합니다. 놀랄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으로 해석하면 말세에 일어 날 예언에 관하여 마 24장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환란이 있겠고, 재난이 있겠고, 핍박이 있겠다. 사랑이 식어질 것이요, 배신이 있을 것이다, 전쟁이 있을 것이다. 죽 말씀하시고 나서 이 일들이 있어야 하되, 이것은 아직 끝이 아니고, 당연히 있을 일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시각에도 세계의 곳곳에서 지진이 있고 전쟁이 있습니다. 도처에 환란과 죄악이 만연합니다. 그러나 놀랄 것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있을 일이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니 없을 일이 있는 것처럼 놀랄 것 없습니다.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베드로는 설교에서 말세에 대한 결정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7절의“말세에”란 말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말세의 개념은 예수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신약시대 전 기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2000 년이 될지, 3000 년이 될지, 몇년 몇월 몇일이라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러므로 시한부 종말론은 비성경적입니다.
다음은 베드로 설교의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설교의 주제는“성령님이 어떻게 오시게 되었는가?”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은 17절에“모든 육체”라고 합니다. “모든 육체에 내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육체”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는 사람 - 즉 늙은이, 젊은이, 남자 여자, 빈부귀천, 유무식, 차별이 없이 예수 믿어 구원 받는 사람 모두를 지칭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은 차별이 없이 누구나 성령의 권능을 다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십시오. “나는 오늘 아침 성령 충만, 성령의 권능,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
이러므로 믿고 구하십시오. 저는 한번 집회에 적게는 5-6 명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5-6000명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아침에 여러분들이 마음을 열고 간절히 구하면, 누구나 다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 성령이 임하시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17~21절 말씀은, 요엘의 예언 욜2:28-32의 말씀으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입니다. 17절-21절까지의 말씀은“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고, 성령의 은사와 권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면서 힘 있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권능을 받으면 복음을 위해 비난과 조롱과 핍박도 받지만, 성령의 도우시는 힘으로 이를 이기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거치는 돌을 제거시키며 처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면 세상은 편해 질것 같지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9-20절에“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아주 무서운 일이 있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많은 환란과 함께, 전쟁과 함께, 역사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편안하기만을 바라고, 잘 살기만을 바라고, 무사하기만을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 재림하실 그 말세에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는가 하면, 이 세상에는 배신과 모든 질서가 뒤집히는 무서운 사건이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놀랄 것이 없습니다. 있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신문을 펴고, 성경을 펴 놓고, 오늘날 일어난 현상을 비교해 보면 당연한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저의 간증을 좀 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병을 고치기도 하지만, 또한 저를 교모하게 괴롭혔던 어떤 목사가 있었는데 사람이 요 얼마 전에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고혈압으로 쓰러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심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오순절부터 시작해서 계속 부어 주실 것을 요엘 선지자와 이사야, 스가랴, 세례 요한 등 여러 선지자들과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는데, 그 예언의 성취로 계속 성령을 부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성령을 부어 주시겠다는 예언의 성취로 성령이 오시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예언의 성취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23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 예수 믿는데, 걸림돌이 둘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에 이미 말씀드린 대로 첫째는 가룟 유다의 문제이고, 다음은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으셨습니다. 3년 동안이나 무엇을 가르쳤기에 제자에게 팔렸나! 많지도 않은 제자 중 한사람이 저 모양이니 예수님은 별로 신통치 않는가 보다 하는 부정적인 반응이 따를 수밖에요. 가룟 유다,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 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초대교회 사람들이 이를 두고 고생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걸림돌이 십자가입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께서는 끔찍하게 십자가에 무력하게 죽으셔야 하느냐 입니다. 이것은 희생이란 말로 설명이 안 됩니다. 본래 십자가는 끔찍한 죄를 범한 사람을 벌거벗겨서 매달아 놓고 처형하는 사형 틀입니다. 그렇게 죽으신 예수님을 메시아 주님으로 섬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롬1:16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 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은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는 일에 바울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특별히 로마를 향해서 쓴 편지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예수님의 제자된 것,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는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고전1: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라고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 보십시오.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십자가의 그 뜻을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구원의 유일한 길로 여기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바른 믿음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가장 귀중하게, 가장 영광스럽게, 가장 놀라운 기적의 능력으로 한번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 때에 비로소 예수 믿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를 영화롭게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설명하는 십자가를 한번 자세히 보십시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시는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 이것은 한 마디로 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저 앞에 있는 십자가의 그림자요 예표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 제사는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실체 없는 그림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은 오랫동안 예언되어 내려오던 것이 오늘 여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십자가가 있으므로 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관해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기도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바다를 잔잔케도 하시고…. 이러한 이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가 하나님이다, 메시아다, 위대한 분이다, 우리 구주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적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저가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고 하는 것을 강하게 증거하여 말씀합니다. 행2:32에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6절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이적이나 표적만으로는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하는 데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십자가와 부활만이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없이는 예수님의 이적 행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부활 사건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11 번 나타나 보이시므로 자신의 부활 증거를 확실히 남기셨고, 하늘의 아버지께로 500 여명이 자세히 보는 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올라가셨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가셔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행2:33절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부어주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속량의 사건을 하나님께서는 만족하게 여기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며 인간과 화목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자신의 몸이요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신 것은 베드로가 설교 말미 36절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온 세계와 우주에 공포하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이 오신 것은 우리 인간의 어떤 공로나 자격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세에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은 예언의 성취로, 또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속량의 은혜로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어 예수님의 중보 사역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화목하게 하시고, 서로 교제하며, 살 수 있게 된 길을 증거로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제, 오순절부터 시작해서 원하고 사모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회개하고 성령을 구하면,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아버지께서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아침에 성령의 권능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