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3ㅣ김남수 목사]
예수님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의식을 통해 예표된 모형 그림자의 그 실물 실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유월절 예비일(금)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면서 자신이 살아나심을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같이 이야기하시며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할하셔서 보이신 장면이 성경에11번 기록되어 있는데, 감람산에서는 500 여명이 보는 가운데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겨 그 약속을 붙잡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러자 오순절 날이 이르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로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셨습니다.(행2:1-4) 오순절에 관해 잠깐 설명 드리면, 본문 행2:1의 “오순절”이란 유월절부터 시작해서 50일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린 날로써 맥추절, 초실절 이라고도 했고, 칠칠절이라고도 했으며, 이 유월절의 안식일 다음날에 익은 곡식 한 단을 흔들어 요제로 드렸습니다. (이 요제는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상징합니다) 요제를 드린 날로부터 시작해서 7주 즉 49일째 되는 날이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이라 했습니다. 오순절은 또한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인 10계명을 주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새 법인 사랑의 법을 돌 판이 아닌 마음의 심비에 새긴 것입니다.
특히 잘 들어 보십시오. 오순절은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에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고 속죄소, 시은좌에서 “내가 이 백성의 죄를 사했노라”선포하시면 그 음성을 듣고, 대제사장이 지성소 밖에 나와 끓어 엎드려 회개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죄를 사하셨습니다.”선포하면, 백성들은 일제히 기뻐하며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며 축제를 벌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 번에 완성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땅에서는 보지 못함으로 알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화목케 하신 메시야이신 것을 온 우주적으로 선포하고 확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오순절 날 설교말미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증거 했습니다. 이러므로 성령강림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우주적으로 확실하게 알도록 선포하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오순절에 처음 익은 곡식을 드린 것은 성령께서 오셔서 영혼을 추수하실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실제로 오순절에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므로 첫 추수인 3000 명이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죄를 깨끗이 사함 받을 수 있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인간이 예수를 믿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 되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 수 있는 길이 환하게 열린 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이러므로 구약 백성들은 오순절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추수한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고, 먹고 마시고 찬송하며, 율법을 읽고 가르치고 암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오순절은 즐거운 절기요, 축제입니다. 바로 이때, 감사하는 그 기간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순절을 맞아 성령의 강림하심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임하신 세 가지 표적은 1)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2) 불의 혀 같이 갈라진것. 3) 방언과 함께 성령이 임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곧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은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에서 일어난 분명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건을 기록하고 경험한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들입니다. 구약을 알고 있는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문화권 사람들이 오순절 사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저들이 알도록, 저들이 이미 알고, 경험한 그 절기 안에서 이 사건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행2:1로부터 오순절 날 사건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2:2-13 절은 이 오순절 사건을 큰 사건으로 성령이 임하심을 말하고 있고, 작은 오순절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성령이 임하시는 장면이 사도행전에 3번에 걸쳐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로 모두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행8:14-17을 보십시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이는 사마리아의 작은 오순절 사건으로 성령이 임하여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는 오순절 사건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행10:44-48을 보면“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 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오.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이는 이방사람 고넬료집 권속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작은 오순절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행19:6, 7절을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열두 사람쯤 되니라” 에베소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작은 오순절 사건이 사도행전에 3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보십시다. 성령께서 임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표적은 “급하고 강한 소리”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이 바람은 아니지만, 바람이라는 상징적인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성령이든, 사람의 영이든,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 “영”을“루아크”라고 합니다. “루아크”는 본래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헬라어로는 “퓨뉴마”라고 합니다. “퓨뉴마” 역시 바람을 뜻합니다. 요3:8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퓨뉴마 프네이”입니다. 이렇듯 히브리인들은 “영”을“바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영”이라고 하면 어딘가 모르게 약간 이상한 느낌을 가지고 귀신이나 혼령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옛사람들은 그 “영”을 가리켜서 “성신”- 한자로“거룩한 귀신”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밖에 달리는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영이란 말이 그리 좋은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언어만을 바탕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령”- 원문대로 하면 “바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바람입니까? 바람의 특성과 성령의 특성이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힘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이 힘인 성령도 우리 마음을 가동시키고,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하시는 등, 큰 역사를 이루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바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 안보이지만 나무를 흔들고, 바다를 흉흉하게 하고, 윙윙 소리를 냅니다.
눈에는 안보이지만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바람,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미국은 큰 대륙이라서 그런지 바람도 아주 세찬 편입니다. 그 가운데 토네이도라고 하는 회오리바람이 있습니다. 이 회오리바람은 기둥처럼 먼지를 내면서 쭉 뚫고 지나가는데, 언젠가 TV에서 방영된 것을 보았는데 자동차가 바람 속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그냥 떠올라 갑니다. 토네이도가 한 번 지나가면, 지나간 자리마다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건물이고 집이고 남아 있는 것이 없이 파괴되어 폐허가 됩니다. 허리케인 같은 태풍도 지나간 자리를 우리는 직접 보지 않았습니까? 바람이 이렇게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큰 권능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령을 바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하리케인과 같은 성령의 권능을 받으십시오.
바람에 이어서 3절은 성령의 임재를 2)“불의 혀처럼”이라 했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불도 아니고 혀도 아닌, “불의 혀 같은 것이”나타나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헬라 원문대로 보면 계속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모르지만 저들의 각 사람 120 명의 머리 위에 “불의 혀 같은” 것이 머무는 것을 저들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각 사람 위에 머물렀을까요? 이 역시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선택하신 자에게 임하시는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불의 혀 같이” 성령을 불로 비유한 것은 먼저 불은 태워 없애는 성질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죄와 불신앙과 불순종이 없어지기 때문에 불에 비유한 것입니다. 불순종 죄악이 있다면 성령의 불을 받으세요. 불로 죄악을 태우세요. 또한 불로 비유한 것은 불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아지게 하듯, 성령이 심령에 임하시면 하나님의 진리와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은 따뜻하게 합니다. 성령은 차갑고 냉랭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훈훈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합니다.
다음은 불의 혀 같이 “혀”의 능력입니다. 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혀는 사람의 지혜 중 가장 작은 것이지만 온 몸을 제어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큰 배가 작은 키에 의해 방향이 결정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혀는 선악 간에 힘이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의 혀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혀의 말은 능력이 있습니다. 전도와 가르침은 모두 혀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강림의 모습이 “불의 혀 같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4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하셨는데,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충만”입니다. 헬라어로 “플레도스”라고 하는 이 “충만”함은 누가가 쓰는 전문 용어입니다. 이 충만은 다른 사도들의 서신서 에는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용어입니다. 이 말은 강한 성령의 역사를 말합니다. 어떤 때는 가시적으로, 어떤 때는 충분히 체험할 수 있도록, 어떤 때는 생명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했습니다. 아주 특별히 강권적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속에 역사하시는 일들이, 이것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음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서 신학적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이 “충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믿어 중생하여 구원받고 하는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하고, 성화하는, 성령의 역사를 “플레도스” “충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충만 이란 무엇입니까? 신학적 용어로 말씀드린다면, 이것은 은혜적 역사가 아니라, 은사적 역사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는 은사적 역사입니다. 충만은 구원의 절대적 조건일 수는 없습니다. 구원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시련을 이기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기 위해, 큰 병을 치유하게 하기 위하여, 이 충만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핍박 가운데서 담대히 전할 때에 충만함을 주십니다. 이것은 은사적이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충만함을 알아야 합니다. 어쨌든 은혜와 은사로 구별 지어 말할 때에 이 충만은 은사적인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하기 위하여, 전도사역을 하기 위하여, 치유사역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성령의 역사들이 “플레도스” “충만” 이라고 합니다. 힘 있는 사역을 위하여 이 은사적 충만을 구하십시오.
여러분 행2: 4-11절을 자세히 봅시다. 4“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5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
오늘 본문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3) 세 번째 표적으로 방언이 나옵니다.
4절: 그들(120문도. 제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 즉 방언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방언일까?
5절: 모인 사람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인데, 9-11절을 보면 14개 나라 이상(리비아 각 지방, 유대교에 들어 온 이방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6절: 모인 큰 무리가 각기 자기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기서 방언은 거기 모인 각 나라 사람들의 언어 즉 지상나라 말입니다.
7절 8절에 놀라는 이유는 갈릴리 사람으로 이들이 배우지도 않은 언어를 즉 무리들이 태어난 각국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듣고 놀랐습니다.
8절은 14개국 이상 나라 사람이 그들이 난 곳 방언(언어)으로 듣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헬라 사람은 헬라어로, 로마 사람은 로마어로, 애굽 사람은 애굽 어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9-11상은 14개국 이상의 국가명이 기록 되었습니다. 완전히 언어가 통한 것입니다.
11절 하반절은 우리가 (14개국 이상 나라 사람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 말함을 들었으므로 그러니 깜짝 놀란 것입니다.
이 행 2장 방언에 관하여 학자들에 따라 어떤 학자들은 귀가 열려 자기 나라 말로 들었다. 또는 어떤 학자들은 입이 열여 각국 방언을 말했다고도 말을 하는데 구속사적으로 말씀드리면, 구약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언어의 혼잡 때문입니다. 언어가 혼잡케 되자, 같은 언어를 사용한 사람끼리 모여 무리를 이루어 시날 평지를 떠남으로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저들이 각기 다른 언어,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외적 표현이요, 각기 다른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의 복음을 전하여 거기 모인 각국 사람들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됨으로, 인류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로 통일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엡2:12, 13, 16-19절에 의하면. 12-13?은“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하였고, 또한, 16-19절은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말씀대로 천하 만민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되고 통일이 된 일이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즉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즉 인종, 국가, 문화의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만일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거나, 지방색 등으로 편당믈 짓게 하거나, 또는 분리시키는 것을 조장한다면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명예, 사욕 때문이요, 마귀의 짓인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를 가리켜 약3:13-16절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이 점을 잘 알고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죄의 뿌리가 있다면 성령의 불을 받아 태우십시오. 우리 교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부흥의 적입니다. 자신을 살피고 이런 죄의 뿌리가 있다면 뽑아 버리십시다. 돌이키십시다.
고전 12장 14장에도 방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방언은 오늘 사도행전 2장이 말씀하는 방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는 것이요, 영의 기도의 언어로 통변이 없으며 그 의미를 못 알아듣는 방언”입니다.(고전14:2, 13-15)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모였다할지라도 방언들을 함으로 모두가 알아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의 특징입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로 하는 것 이것은 사도행전 2장의 방언과는 다릅니다. 사도행전 2쟝의 방언은 아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의미합니다.
본문 11절에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적인 얘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큰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언어가 통역 없이, 문화적 장애 없이, 언어의 장벽 없이, 그대로 통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오순절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순절 교회라는 말을 합니다. 오순절 교회가 무엇입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 말씀의 역사가 있는 교회, 하나가 되는 교회, 서로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개인적으로나 교리적으로나 어떤 말씀을 듣든지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와서 100% 수용이 되고 믿어질 때에, 이것이 바로 오순절 교회, 초대 교회입니다. 성령 받은 교회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어떤 말씀을 한 시간 내내 들었는데도 전혀 귀에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못 박았거나,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대로 통하게 하는 것이 오순절 교회, 초대 교회 ,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결국 성령강림 사건 앞에서 우리들은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기적이다, 새 술에 취했다, 알 수 없는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교회의 본체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므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교회가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해되고 믿어지고 받아들여집니다. 하나가 됩니다. 서로 사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하실 때에, 듣는 자와 말하는 자 사이에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실 때에 거기에 구원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