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2:8-9ㅣ 김남수 목사]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은 모든 전도지에 사용할 만큼 주님의 귀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 구원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으로부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역사로부터 구원이 시작되고, 또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창조적인 것이요, 일방적인 것이요, 능동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구원받을 만한 수준에 도달하므로 주께서 우리를 인정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은총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런고로 은혜, 믿음, 구원 이것은 선물입니다. 나의 나됨은 오직 은혜에 있습니다.
은혜로 알 때에만 은혜가 은혜 됩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은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은혜 속에 살고, 은혜롭게 죽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은혜는 은혜로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은혜로 라야 비로소 은혜를 은혜로 수용하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믿음으로만 은혜를 받아들이게 되고, 은혜의 그 깊고 넓은 뜻을 알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 속에 나타난 사람들의 믿음에 관해 믿음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실 때 꼭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느니라. 딸아 평안히 가라”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십니다.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당사자의 믿음을 한번 분석해보면, 아무리 보아도 완전한 믿음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 완전하지 못한 믿음을 완전하게 보아 주였다는데, 거기에 고마움이 있고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나가셨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 잡던 제자들이 밤새껏 수고했는데도 한 마리도 못 잡고 지금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고기잡이는 다 끝난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기를“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하십니다. 이 말씀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그 모든 이적을 본 다음에 된 일이라면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바로 엊그제 그들이 만난 예수님이십니다.
여기 어부들은 전문이 고기잡이요, 늘 바다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대 예수님은 목수였습니다.
목수가 어부에게 그것도 젊은 사람이 노련한 어부에게“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하십니다.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가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묘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들이 밤이 ?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이 말을 한 이들의 그 때의 믿음을 생각해봅시다.
나는 저들이 물고기 잡으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고 빈 그물만 들고 서서, “보시오, 내 이럴 줄 알았다고요. 잘 보세요. 예?” “한 마리도 못 잡았지요.”이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불신의 마음을 가졌었는데, 그러나 말씀하신 분의 체면을 위해서 “말씀하시니 당신 체면 보아서 우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가득 잡았습니다.
저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가서 그들이 뭐라고들 합니까?
보십시오. 우선 놀랍고, 그리고 예수님 앞에 가서 꿇어 엎드려, 베드라가 하는 말인즉 이렇습니다.“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본래부터 죄인이지마는 이 상황에서 말하는 특별한 죄는, 예수님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의심하면서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확신이 갈 데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좀 의심하면서도 순종하면, 그 부족한 믿음을 믿음으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너무나 고맙지 않습니까?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믿으매, 이를 의로 여기셨다고 하지마는 처음에 그의 믿음은 별로 신통치 않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땅을 너에게 준다고 하셨는데, 흉년이 드니까 애굽으로 내려왔고, 아들을 준다고 하셨는데, 10년 기다렸다가 아들이 없다고 첩을 얻었고, 믿음이 휘청휘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습니다.
아주 부족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또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부흥사들이라든가 병을 고친다고 하는 분들을 보면, 병 고친다고 하는데, 어떤 환자를 놓고 기도를 했는데도 그 환자가 낫지 않으면, 뭐라고 하는 고 하니 “당신 믿음이 업구만”하고 둘러대는 것입니다.
책임을 환자 쪽에 돌립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믿음이 없구나.”하고 안 고쳐주신 적이 있습니까?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보고, “가만히 보니 너 믿음이 없구나. 너 멀쩡하게 쳐다보는 걸 보니 믿음이 없구나. 그만 두겠다”하신 일이 없다 이 말씀입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가지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믿음을 크게 여기고, 조그마한 믿음을 가졌을 때, 조금 순종한 척만 해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기시고, 구원을 나타내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큰 병인데도, 당사자는 믿음이 없는데 고쳐주시는 주님을 성경에서 종종 봅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으로 누워있었는데 본인은 주님께 나올 수도 없었고 믿음도 없었지만, 백부장의 하인을 불쌍히 여기는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누군가가 환자를 위해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을 보시고 큰 병이라도 고쳐주시는 것을 저는 현실에서 종종 목격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환자를 놓고 공적으로 기도드림으로 고침 못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공적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병을 교인들이 알면 창피하니까, 그러나 그는 고침 받지 못한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음 믿음 하지마는 대단한 믿음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부족한 믿음을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크게 여기시고, 그 믿음 위에 복을 주십니다.
특별히 그것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먼저는, 예수님 자신이 말씀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큰 선물입니다.
전도자 사역자를 보내 주신 것이 선물입니다.
내가 말씀을 만나게 된 것,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 이것이 선물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믿게 되는 것. 이것이 선물입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은 끝까지 안 믿습니다.
은혜에도 무관심 합니다. 은혜를 그냥 당연히 여깁니다. 심지어는 은혜를 받고도 원수로 갚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으면, 어떤 사람은 그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하는 일이 막히기도 하고, 그러면 낮아지고 낮아져서 이제 시원치 않는 가운데서도 조금 겸손해지고 믿음을 가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주십니다.
구원을 이루십니다.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자기 믿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믿음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만큼 믿음을 가지고,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 교회에 올 때 어떤 사람은 갈까 말까 하다가 “안 가면 좀 괴롭지, 아무래도 가는 게 나아. 또 누가 전화로 왜 안 왔느냐고. 그러면 또 핑계대기도 어렵고, 에이 가자 그 까짓것.”그래 억지로 나왔는지 몰라도 그만큼도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은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크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 성경은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은혜, 믿음 -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처음 믿을 때는 내가 믿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얼마간 믿고 나가면서 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만큼 믿음을 가진 것도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큰 선물입니다.
믿고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안에서 능력이 되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말씀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능력되게 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보다 더 귀한 믿음,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고, 또 많은 시련을 통과하게 해서 믿음을 키워주십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바울,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많은 시련을 통해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본문 8절은 믿음과 은혜를 자상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전도지에 사용하는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선물로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 받으면 믿음이 옵니다.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8절은 이 관계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큰 구원의 사건,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그 사건이 나에게 관계가 되고, 내게 생명이 되는 것, 또한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 이것이 다 은혜입니다.
아무리 많이 듣고, 아무리 많은 시간을 배웠어도 믿어지지 않은 데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어지는 그 순간부터 은혜의 현실성이 이루어집니다. 요사이, 추석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데, 그 마음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선물이란 원래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물이라는 것은 그 속에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문제는 그 선물에 담겨있는 사랑입니다.그 사랑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랑을 깨닫고 수용하게 될 때야, 비로소 선물이 선물되는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좋습니다.
그 속에 믿음을 사랑을 담는 자세가, 그리고 그 마음을 받는 자세가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선물성”이라는 것입니다.
주는 자도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고, 받는 자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때에 선물이 선물 되는 것입니다.
선물을 받을 때에도 겸손하게 믿음으로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뜻을 모르고, 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사랑은 본래 보수나 대가가 아닙니다.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것을 알아야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제 1의 강철 왕이라 불리는 카네기는 본래 스코틀랜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벌린 사업이 너무나 어려워서 급기야 파산에 이르게 되어 하던 일을 다 정리하고 어머니를 비롯한 온 식구들과 같이 미국으로 이민 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미국까지 갈 여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카네기 어머니의 친구 되는 핸터슨 부인이 선뜻 20파운드를 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이 멀리 낯선 땅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믿고 빌려준 것입니다.
카네기 가족은 너무나 고맙고 감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빌려간 돈은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하고 거듭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 떠나간 카네기 가족은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꼭 하루에 50센트씩은 핸터슨 부인의 돈을 갚기 위해서 저축했습니다.
따로 양말 속에 한푼 두푼 모아두었습니다.
어느덧 어렵게 모아둔 그 돈이 20파운드와 맞먹은 200불이 되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카네기는 200불을 송금수표로 바꾸고 나서, 그날 성대하게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제 빚을 갚고 자유롭게 되었다!”하고 서로 축하해주며 기뻐했습니다.
축제장에서 카네기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합니다.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갚을 수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빚은 갚을 수 있으나 은혜는 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카네기는 은혜를 안 사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 이였습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하여 평생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은혜를 보상으로 알고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빌린 돈은 갚을 수 있지만, 그가 나에게 준 사랑은 결코 갚을 수가 없습니다.
잊지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입니다.
믿음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음악가 『하이든』은 주옥같은 귀한 성가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어느 날 제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귀한 곡을 작곡하실 수 있습니까?”
하이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네.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지. 귀한 곡을 작곡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야.”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하이든은 ‘천지창조‘라고 하는 유명한 오라트리오를 작곡했습니다.
이 곡을 처음으로 청중들 앞에서 연주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연주회를 바로 앞두고 하이든은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지휘를 못할 만큼 거동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천지창조’는 다른 지휘자에 의해서 초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이든은 그저 연주회장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켜볼 따름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그 장엄한 연주와 선율에, 너무나도 감격한 청중들은 곡이 끝난 후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쳤습니다.
그때에 지휘자는 청중들을 진정시키면서 “다 앉으십시오. 이 귀한 곡을 작곡하신 분은 바로 하이든 선생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지금 저기에 앉아 계십니다.”하고 하이든을 가리켰습니다.
하이든을 향하여 다시 청중들은 열렬한 갈채를 보내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자 하이든은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곡을 작곡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뿐입니다.
우리 모두 그 분께 영광을 돌립시다.”사람들은 모두 더욱 감격했습니다.
여러분, 변변치 않은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공으로 돌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많은 존경을 받으면서 짐짓 침묵하는 것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은혜가 은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구속받음도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가진 믿음도 은혜이니, 내가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영광 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구원은, 이 또한 오래전부터 예비 된 것이요, 창조섭리와 구속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역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주님을 믿게 하고 주님을 영접하게 합니다.
우리 마음을 열게 합니다.은혜와 믿음, 구원이 다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이 선물 받는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감사하고 기뻐해야합니다.선물 받는다는 것은 기쁨과 감사입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내 공로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닌데, 믿음마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겸손해야지요.
또 있습니다.
이제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셋째,우리는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은혜 주신 분께,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신 은혜에 대한 진정한 보답인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무도 고맙고 귀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