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13-16 ㅣ 김남수 목사]
몹시 더운 계절입니다.견디기 어렵도록 더워서 입에서 불평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계절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날씨가 덥다가 추수 때가 되면 달라집니다.
찬기가 싹 납니다. 찬기가 나면 모든 게 성장이 멈춥니다.
그때까지 많이 성장했으면 큰 열매를 거두고, 그때까지 충분한 성장을 못했으면 작은 열매를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어렸을 때 농촌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은 덥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덥다고 투덜대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더위라는 것은 견디기는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더위와 함께 생명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더위가 없으면 벼나 곡식이 자라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논바닥 물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따끈따끈해야 벼가 무르익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쓰임 받는 지도자가 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미래에 어떤 지도자가 큰 영향력을 미치고 쓰임 받는지, 먼저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보급 학자들 가운데 원 동현 박사가 계신대 아주 천재적입니다.
연변 과학기술대학 교수시며, 선교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일보가 뽑은 21C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명단에 든 분입니다.
그분의 책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는 노동자 집단 즉 블루칼라(blue color)가 세계를 주도해 왔다.”
노동자 육체로 일하는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세계를 주도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20C에 들어서 부터는 화이트칼라(white color)가 세계를 주도 하였다.”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은 지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힘이 아니라 머리로 일하는 것입니다.기술이 뛰어난 머리 좋은 사람에 의해서 세상을 주도해 왔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21C가 되면 골드 칼라(golden color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하였습니다.
golden color가 뭐냐 하면 바로 지력과 심력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심력은 힘입니다.
이것은 의지력 같은 것입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대회 때 TV로 경기중계방송을 보는데, 여러분은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습니까?
저는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을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런 세계의 선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여서 경쟁을 벌립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어디서 승부가 나느냐?
그것은 기술로가 아니라 마음가짐에서 납니다.
마음이 삐꺽하면 안 됩니다.마음이 들뜨고 흔들리면 끝장인 것입니다.
마지막은 심력으로 좌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지요.우리나라 양궁이 세계 제패하는데, 양궁선수가 화살을 쏘면서 하나가 딱 빗나가면 끝나지 않습니까?
왜요?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손이 흔들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흔들렸지요.
결론은 심력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원 동현 박사는 한 가지를 더 말합니다.
잘 들어 보세요.
“그 다음, 세계는 다이아몬드 칼라(diamond color)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합니다.
diamond color가 무엇이냐? 하면, 지력과 심력 그리고 그 위에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헌신하는 마음, 봉사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높은 차원에서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이 성품화한 사람, 그리스도를 닮은 그런 성품의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벌써 우리나라 대입시에도 사회봉사를 참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돈만 버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결국 봉사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인격의 사람에 의해서, 거기서 창의력이 나오고, 지혜가 나오고,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앞으로 사회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원 박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Ⅰ. 성장 이란?
오늘 본문 15절에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합니다.
스스로 자란다는 것이 아니라, 자라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장케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갑니다.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 같고, 어떤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그리고 어느 수준에서 높이 성장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흐뭇합니다.
우리 예봄교회 교인들을 참 자랑스럽습니다.
이번 집회 때도 여러분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교인들이 감탄하면서 힘을 얻고 간다고 칭찬들을 합디다.
아무쪼록 그런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 성장, 성숙해감에 있어서, 먼저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장의 원동력은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입니다.
식물을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서에서 말씀하는 대로 씨를 뿌리는 자가 있고, 물을 주는 자가 있고, 가꾸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다.
그러나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라는 것입니다(고전 3:6~7).
2) 또한, 성장이란 새로워지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면서 잎이 떨어지고 새 잎이 나오고, 파충류로 말하면 허물을 벗고 새로운 것을 입고 계속 새로워지고, 새로워지는 역사가 성장입니다.
우리 집에 있는 가재도 3번 허물을 벗더니 많이 자랐습니다.
성장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로움을 향해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말하면, 중요한 것은 내가 옛것을 버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손을 보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평생 술, 담배를 끊어야 될 줄 알면서도 교회에 나오면서 집사까지 되었는데도 이것들을 못 끊어요.
그런데 위암과 폐암에 걸리니 당장 끊더라고요.
그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손을 보시니까 꼼짝 못한다”고 그럽디다.
어떤 경우는 육체의 생명이 죽는 일이 있습니다.
바울은 근친상간하는 부도덕한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죽게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못 끊는 것을 하나님께서 끊게 하십니다.
내가 고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손을 보시므로 고치고, 버리게 하십니다.
무섭고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손보시기 전에, 이제 그만 버리고 멈추십시오.
3) 또한 성장이란 자라면서 내 역할, 내 소명, 내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유치할 때는 뭐든지 다 할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장하면서 내 할 일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은 이것이다.
그걸 알게 되고 거기에 집중합니다.
‘하인쯔 코후트’라는 심리학자는 “성장은 자기 삶의 한계를 직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삶의 한계를 직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철이 난다는 것입니다.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Ⅱ. 미성숙한 어린 아이의 특징 입니다.
그런데 14절은 어린 아이 즉 미숙한 모습에 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며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첫째, 미성숙의 특징은 유혹에 빠진다고 합니다.성숙한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성숙자에게는 항상 위험이 열려 있습니다.유혹에 빠지고, 세상 풍조에 빠지고 - 빠져가는 것이 위험합니다.
둘째는, 풍조에 밀려간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와 유행을 따릅니다.
요사이 나의 옛 동창들을 보면 한 달에 몇 번씩 메일로 소식이 오는데, 세계여행 구경 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그는 미성숙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요동한다는 말입니다.
꾸준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시작은 잘 하는데 끝맺음에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용두사미가 됩니다.
요동한다, 휘청거린다는 것은 아직도 어리다는 것을 말합니다.미숙한 믿음은 열매 역사가 없습니다.
미숙한 사랑은 개념뿐이지 열매가 없습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성숙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 정신과 의사 ‘네온 사울’이 말한 「정서적 성숙」‘네온 사울’이라고 하는 정신과 의사가 「정서적 성숙」이라는 책에서 성숙한 인간의 생활양식과 삶의 철학을 여덟 가지로 설명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요약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심리학자가 본 성숙은 이러한 것입니다.
1) 먼저, 책임질 줄 안다.
의존하는 것이 아니고, 끌려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판단할 둘 아는 독립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특별히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입니다.
내 책임은 내가 집니다. 남의 책임도 내가 집니다.
2) 또한 성숙한 사람은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유의 공유성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유한다는 게 무엇이냐, 나 혼자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가졌든지 그 소유에 공유성이 있는 것입니다.베풀 줄 아는 자가 성숙한 사람입니다.
나 혼자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3) 또한 협력할 줄 아는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을 줄도 알고, 도움을 줄줄도 알아야 합니다.도움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는 사람, 유치한 사람입니다.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어찌 주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협력을 해야 되고, 협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사회성이 있어야 바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4) 또한 자기 양심과 조화하여 느낌과 행동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감정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정 조절을 못한다는 것은 어린 아이 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 보다 낫다.”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아주 높은 인격으로 성숙한 사람이지요.
나아가서, 분노와 적개심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지요.
분이 난다고, 그것이 곧 미운 마음으로 바꾸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의와 불의를 함께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 또한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지만, 이 현재가 현재로 끝납니까?
그 후속도 있지요. 뒷일, 미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오는 것을 붙잡지 못하면,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한 것입니까?
적어도 어른이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아니겠습니까?
Ⅲ.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성숙에의 권면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1) 본문 13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변함없이 직선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성숙함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성숙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요, 인격의 문제입니다.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느냐. 바로 목표를 세우고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좋은 열매를 원하십니까?
열매를 서두르지 말고, 좋은 나무가 되세요.
좋은 나무가 되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도 좋은 성적을 내려고 서두르지만, 그래서 될 일이 아닙니다.
학생 스스로가 공부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올바른 자세, 그 인격 자체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2)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성장의 자세에 관해 친절히 가르쳐 줍니다.
초조하고 불안해 할 것이 없고, 계속적으로 겸손한 자세에 있어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런고로 항상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바로 거기까지가 성장의 한계입니다.
언제라도 계속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더 깊이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될 때, 그는 끝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것입니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인격, 겸손한 인격으로 더욱더 주님을 닮아 겸손하게 성장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이 성장의 비결에 대하여, 오늘 성경은 누누이 가르쳐 줍니다.
13절에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래서 성장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따로 따로 있으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 보면, 믿는 것은 대단합니다.그런데 아는 것이 없어요.
흔히들 이 날은 좋은 날이다. 저 날은 손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 이사 할 때 보면 이 날은 좋고, 저 날은 왜 나쁘냐 하는 것은 모릅니다. 그저 좋은 날이 좋은 것입니다. 이성, 지식은 전혀 없습니다. 믿는 것만 있습니다.
좌우간 믿는 것은 대단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 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 믿음은 있는 데, 지식이 없으면 미신이요. 지식은 있는 데. 믿음이 없으면 철학입니다.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믿는 것과 아는 것 - 지식과 믿음이 하나가 되어야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 능력이 발동합니다.
아는 신앙지식을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믿음으로 행할 때, 즉 바로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 자연히 그 길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밀어 붙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거기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4) 또 성장의 비결은 15절에“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합니다.
** 성장의 비결은 이 말씀을 보면 “오직 사랑 안에서 ”입니다.
모든 것을 묶어서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행하고, 사랑에 미쳐서, 높은 사랑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또한 “참된 것을 하여” 입니다.
진실, 그것이 성장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외식이나 체면치레는 위신 자기체면을 위한 것이요,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참다운 열매가 없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진실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습니까?
지혜의 왕 솔로몬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이렇게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죽기 전에 저의 두 가지 소원을 이루어 주옵소서. 하나님이여, 깨끗한 진실을 찾게 하여 주옵소서“이것이 그 기도였습니다.
무릇 진실한 신앙이 있고야, 성장이 따르고, 열매가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는 것입니다.
** 나아가서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입니다.
범사에 - 모든 환경에서 역경은 역경대로, 순결은 순결대로, 성공은 성공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범사에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이의 모습으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언)여러분,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이란 비 기독교인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원도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의 괴로워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소원이 바로 내 소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바로 내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여기시는 그것이 바로 내 영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지체로 지체의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높은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의지로 이 세상 잡다한 일들을 멀리 내려다봄으로써 초연하게 넉넉히 이기는 그런 생을 살아가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고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