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22-33ㅣ김남수 목사]
오늘 설교는 부부윤리에 관한 말씀인데 자신에게 관한 말씀이라 생각하며, 부족한 점이 발견되면 자신이 그것을 고칠 것을 생각하고 들으시면 행복한 부부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가 결혼 주례를 할 때 꼭 신랑 신부에게 일러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행복한 부부생활의 하나님께서 세우신 근본 가정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만 살면 됩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가정이라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삼라만상을 창조 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다음에 맨 마지막에 창조하신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주례하시어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하여금 함께 하도록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가정은 창조원리인 동시에 축복의 그릇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며 21일은 부부의 날인데, 이 원리를 떠나서는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나는 이 시간에 어떻게 하면 부부가 서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끌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한 비결을 성경말씀을 통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Ⅰ. 먼저 남편과 아내의 존재적 위치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 때,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위치가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위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도의 남편으로,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로 계시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인간은 그 분께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할 위치에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을 돌보고 인도하시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남자와 여자의 창조의 섭리에 관해 고전11:9절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존재적 위치에 관해 고전11:3에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한 가정을 사람의 몸에 비유 한다면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위에서 몸을 이끌고 돌보아 주어야 하며, 몸은 머리를 받들어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적 관계가 잘못된 가정은 큰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적인 계획과 목적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계획을 따르고 있습니까? 창조질서가 어지러워진 가정은 하나님의 복이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고통과 슬픔만 있을 뿐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남편과 아내의 심리적인 관계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의 심리적인 관계에 관해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남편에게는 다스릴 심리가 있고, 아내에게는 사모하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남자는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대접을 받기 원하며, 또 가정을 다스리기 원합니다. 이것이 지나친 사람은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가장이 진정으로 한 가정을 잘 다스리려면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과격한 집에는 결코 행복과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아내에게는 남편을 사모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이 존재적인 심리를 벗어나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있어서 이 심리가 잘못되면 “투기“가 되어 가정을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내는 기도로 자신의 심리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나아가서, 성경은 남자에게 “돕는 배필”(창2:18)로 여자를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남자에게는 도움을 받고자 하는 심리가 있으며, 여자에게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집에 들어오면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내는 돕는 심리가 있어서 어찌하든지 도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러므로 아내는 돕는 마음을 잘 개발하여 남편의 부족함을 채워주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온전한 남편이 됩니다. 얼마나 아내가 잘 돕느냐에 따라 남편의 자질이 달라집니다. 아내의 도움을 잘 받은 남편은 훌륭한 가장 사회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남편은 실패한 가장 사회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 하는지 모릅니다. 아담의 실패를 보십시오. 마귀가 아담을 직접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하와를 유혹했고, 그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게 했던 것입니다. 인류 가정의 첫 실패에서 우리는 아내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력을 가진 아내가 남편을 잘못 도울 때, 얼마나 큰 불행이 야기 되는가하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정윤리의 계획을 올바로 알고 그 계획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Ⅱ. 진실한 사랑에는 의무와 책임이 따릅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여 결혼했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창조 시 주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불행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 의무를 다 할 때, 가정은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의 의무는 무엇이며, 아내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1. 아내의 의무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성경은 아내의 의무를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먼저 유혹을 받아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해야 할 의무는 딱 두 가지인데, 21절에 복종과 33절에 경외 존경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을 경외, 즉 존경하라고 합니다. 복종이라니, 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인가? 이러고 대들 일이 아닙니다. 본문을 잘 읽어 보십시오. 충분히 복종할 가치가 있습니다. 왜요? “안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주님께,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했습니다. 높고 엄숙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와 더불어 성경은 남편을 경외하라고 가르칩니다. 경외란 말이 무엇입니까? 경외란 존경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아내들이 남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물론 남편이 존경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데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자꾸 바라보고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칭찬하면 등에 뿔이 난다고 하여 권면한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장점을 찾아 칭찬함으로 격려할 수 있습니다. 권면하려거든 많이 기도하고 때와 분위기를 봐서 하십시오.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아내에게 칭찬 받는 것만큼, 기쁜 일이 남편에게는 없습니다. 남편이 고통 중에도 밖에 나가 일하는 것은 가정의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입니다. 남편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칭찬하고 감사하는 말을 아낌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25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분을 위해서 복종하고 존경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복종이 그렇게 힘든 것 입니까? 이 깊은 면을 생각해야지 복종만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같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심같이 그렇게 희생적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받는 여자가 그래 남편을 위하여 복종 좀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그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복종이 행복한 것이지요. 복종이 아내의 귀한 덕이지요. 믿음의 어머니 사라는 아브라함을 주라하며 복종하고 존경했습니다. 이런 복종이라면 죽어도 좋지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 같은 그런 희생을 남편이 해 준다면 내가 그 남편을 위해서 그래 밥 좀 한다고 불평이겠습니까? 남편 되신 분들 출근할 때 아침 밥 먹고 가십니까? 무슨 고생을 한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짐이 되겠습니까? 성경은 이와 같은 관계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남편에게 존경하라. 이렇게 성경은 당당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남편들아! 아내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 두 사랑의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렇게 완전히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정의 문제가 심각해 져 가고 있습니다. 가정이 망가져나가고 파혼시대... 날로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브라우닝」이라고 하는 미국 시카고 대학 교수는 가정이 파괴되어 가는 원인 두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1 먼저 하나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스스로 희생할 마음이 없습니다. 봉사할 마음이 없습니다. 이기주의입니다. 예를 들면 젊은 어머니들이 아기에게 젖을 불리지 않습니다. “왜 젖을 물려? 우유 먹이면 되지! 젖 먹이면 몸매가 망가지는데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 보십시오. 그랬더니 결정적으로 그렇게 젖을 아끼던 여자들에게 유방암이 많아졌습니다. 또 자녀들은 정신적으로요. 요사이 보면 우유만 먹이던 아이들에게 오늘날 비대증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유를 출생 후 5개월까지 먹는 아이에게는 비대한 것도 없고, 유행성 질병도 별로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정상적이니까요. 그래 이제 와서 유럽에서는 프랑스에서까지도 새삼스레 모유를 먹인다고 합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기심 탓이었습니다. 자기중심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2 또 하나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희생을 통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모든 기쁨이라는 것은 수고와 희생에서 오는 것이거든요. 이기적으로는 근본적으로 고독하고, 이기주의로는 축복이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주의는 불행으로 직결됩니다. 그런데 이기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희생을 통해서 행복과 기쁨과 축복이 있다는 이 진리를 잃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부부가 희생을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으려고 서로 의논하지 말고 희생할 것 줄 것을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나 남편을 잘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해 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기쁨은 희생,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봉사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주는 일,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주는 것이 기쁨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준다는 것 자체가 줄 수 있는 축복을 받은 것 아닙니까?
그러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복종과 사랑, 그 속에 신비로운 조화가 있는 것입니다. 복종하라, 격려하라, 사랑하라, 주께 하듯 하라. 주께서 당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참 사랑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하는 말씀입니다. 철저한 희생적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데이빗 아우스버그」라고 하는 박사님이 「사랑의 대결」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속에서 부부싸움의 3가지 유형을 말하고 있는데, 참 재미있어서 소개합니다. 부부싸움을 한참하고 나서 결론을 어떻게 맺느냐를 봅니다.
① “내가 이기고 너는 졌다” 이렇게 결론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 이기고 싶지요? 오늘 내가 이겼다. 네가 졌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잠깐 휴전 된 것 같으나, 또 연장전이 벌어집니다. 그때부터 “두고 보자” 합니다. 연장전의 선포입니다.
② 또 이와 반대로 “당신이 이기고 나는 포기했다. 이제 더는 안 싸울 거다 .당신이 이겼소. 나는 포기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는 증오가 시작됩니다. 두고 보자. 이것입니다. 이 두 경우가 다 실패한 경우입니다. 이겨도 소용없고, 져도 소용없습니다. 자, 이기고 난즉슨 영장전이 시작되고, 졌다하고 선언하는 순간에 마음에 증오가 싹트는 것입니다. 그러니 둘 다 소용없는 짓이지요.
③ 이제「아우스버그」교수는 doormat를 이야기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실내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니까 door 앞에는 신발의 흙을 터는 doormat를 깔아 놓았습니다. doormat식 부부싸움이 가장 바로 된 것이고 그는 결론짓습니다. 나를 밟고 가라, 진흙까지 집안에 들여 놓지 말라, 그것입니다. 나를 밟고 가라, 나는 희생할 것이다. 그러나 가정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소중한 것이다. 나는 doormat 같이 밟혀도 좋다. 그러나 가정과 사랑의 고귀함은 지켜다오.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부부라면 부부싸움 할 집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나는 신발 털 개요. 밟고 지나가시오. 이렇습니다. 더러운 것은 다 털어 내고 깨끗하게 들어가 달라--- 이 사람이 싸울 사람입니까? 이런 길 밖에는 참으로 사랑의 길은 없다. 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부부싸움이 시작되려고 하면 서로 먼저 doormat를 생각하고 거기서 멈추시기 바랍니다.
2. 남편의 의무
남편의 의무는 사랑입니다. 오는 본문 26절을 보면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합니 다. 사랑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그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싸움을 한 날에도 교회에 나와 예배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서 말씀을 듣는 중에 마음이 깨끗해지고, 뭐 내가 잘못했느냐 네가 잘못 했느냐 할 것도 다 없어집니다. 또 다시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말씀이 계속 공급되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가 계속 공급될 때, 이 시랑은 생명력을 지킬 수가 있는 것이며, 더욱 발전 하게 되는 것이고, 사랑의 높은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하고 흠이 없게, 깨끗하게,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이렇게 지금 순수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몸같이 사랑하라 합니다.
또한 27절을 보면 남편에게는 아내를 양육할 의무가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의식주생활을 제공해 줄 의무가 있고, 생활의 기쁨을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조차 주지 않으면서 며칠씩 외박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크리스챤 남편들은 남편의 의무를 다 잘해야 합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2:26)고 말씀합니다. 가정은 신앙실천의 중요한 처소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남편의 의무를 충실히 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은혜와 평강이 더욱 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나아가서, 남편은 아내의 연약해진 고뇌를 동정해야 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남편들이 자신의 몸인 아내를 동정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진실한 동정을 받는 아내는 행복합니다. 남편의 동정은 물질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모든 시름을 잊고 부딪친 역경을 능히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아내의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알고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심적으로, 생활적으로 ,육체적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럴 때 남편이 진정한 배우자가 되어 그 상처를 치유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처는 더 커져 가정에 큰 비극이 야기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아내는 남편을 복종하고 존경하라. 존경과 사랑이 함께 있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합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동시에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아주 신비로운 계시적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부부 사랑 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자녀 사랑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웃 사랑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 보면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아느니라.”합니다. 오묘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실천함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시고, 더욱 친밀한 복된 부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