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3-16ㅣ김남수 목사]
독일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연세가 높으신데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을 보면 언제나 반듯이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를 합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물으면, 이 아이들이 자라면 장차 이 가운데서 대통령도 나고, 목사도 나고, 학자도 나고, 훌륭한 분들이 태어나게 될거요. 그런고로 나는 지금부터 저들을 존경합니다. 그 교장 선생님 밑에서 인사를 받은 아이들 하나가 종교개혁자 마르틴 투터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아이들을 대합시다. 그리고 오늘 말씀대로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인데, 아이들이 실수를 할 때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가령 거짓말을 했다면 “내가 말하노니 거짓말하자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은 거짓말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또 재미 있어서도 하고 싶은 것입니다. 거짓말을 할 때, 성경책을 딱 펴서 “자 성경을 읽어보아라”고 합니다. 읽으면 거기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셨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걸 다 읽은 다음에 “어떻냐?”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네게 말하지 않느냐? 거짓말 할할 것 아니다” 이렇게 가르쳐 놓으면 앞으로 큰 다음에도 어느 때에라도 컬컬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에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해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내 뜻이 아니고 성경말씀이 내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것이 어린이 교육의 기본 정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어린아이들을 주님께로 인도한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가 먼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유아세례 때, 부모가 대신 신앙고백을 하고, 서약하는 문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느뇨?” 너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선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의 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짧은 내용이지만, 그 속에 유대인의 자녀교육이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왜 유대인의 자녀가 그렇게 강하고 우수합니까? 우리 나라는 노벨상을 하늘에 별을 쳐다보듯 선망하지만, 민족적으로 분석해보면 노벨상의 60%가 유대인이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우수한 민족이 됐느냐 하면, 그 비밀이 자녀교육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마땅한 자녀교육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풍속을 보면 가장 핵심적인 것이 자녀 교육을 우선으로 하고, 거주지 선택도 자녀 교육에 기본을 두고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반드시 회당 옆에 삽니다. 걸어서 나올 수 있는 곳에 삽니다. 모든 것보다 이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교통이 좋고, 편리하고, 어떻고 ……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가 판교에 교회부터 이렇게 먼저 지었습니다마는 유대인들이 회당을 짓는다면 아주 허허벌판에 짓습니다. 싼 땅을 사 가지고 회당을 먼저 구성하고, 공동체에서 거기다가 회당을 짓습니다. 그리고 회당을 삥삥 돌아가면서 각각 사는 자기 집을 짓습니다. 울타리 치듯이 둥그렇게 삽니다. 그분들은 생각합니다. 걸어서 갈수 있는 거리에 회당이 없다면 유대인이 아니다, 그래서 회당을 중심으로 온 가족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회당은 주일에만 한번 나오는 데가 아닙니다. 생활의 중심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목동에서 판교로 교회를 따라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듣고, 우리 교우들의 신앙을 부러워 하고 감탄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그렇게 살 뿐 아니라, 그들은 항상 「율법과 탈무드」로 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어떤 고등학교에서는 그 바쁜 시간에 오전 내내 오로지 「율법과 탈무드」만 읽습니다. 그리고 토론을 합니다. 「율법과 탈무드」를 오전에 읽고,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공부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열심히 읽습니까? 그렇게 교육해서 세계적인 학자가 나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율법과 탈무드」가 꽉 차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유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들의 지혜가 있고, 삶의 생명력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이 우루루 모였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복을 빌어 주세요”하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복을 받아야 산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수고해도, 예수님께 나와 복을 받아야 된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도 모르고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꾸짖는 제자들에게 노하시며,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고, “어린아이들을 이리 데리고 오라”고하십니다. 오자 아이들을 안고 안수시며 복을 빌어 주십니다. 너무 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한번은 명절에 절기를 지키려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돌아오는 길에 하루쯤 길을 가다가 보니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부모가 다시 되돌아가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자, 부모가 왜 그러했느냐고 묻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몰랐습니까?”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가 행복의 근원이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자라나신 예수님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자 「페스탈로찌」는 말하기를 “최상의 학교는 가정이요, 최상의 커리큘럼은 사랑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경건한 사랑의 삶을 말한 것입니다. 자녀는 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키우는 것입니다. 본이 된 생활이 중요합니다. 부모의 하나님 사랑하는 신앙자세, 그 가치관,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경건과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자녀는 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배웁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 있어서 성경과 기도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자녀는 잘못될 리가 없다 했습니다. 어거스틴 자신이 32살 때 까지 사생아를 낳으며 탕아였지만, 어머니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회개하여 신교와 구교의 경건한 신학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부모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자녀는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현재 생활 전부와, 내가 장차 바라는 생활 전부는 천사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를 천사라고 부릅니다. 그 어머니는 계모입니다. 친 어머니도 아닌 그 어머니가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천사와 같은 분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천사와 같은 어머니, 바로 그분에게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합니다. 남북전쟁 때 한참 싸우는 중에도, 중요한 결정할 문제가 있으면 숙소인 그 천막 문 앞에 손수건을 걸어놓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시간에는 어떤 참모도 천막 안에 들어 갈수가 없고, 기도가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는 신앙으로 남북전쟁을 통해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킨 일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부모의 잘못된 삶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히틀러가 600만의 유태인을 죽인 일입니다. 우리 나라가 6.25전쟁을 통해 약 150만명이 죽었습니다. 이북 김씨 왕조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켜 서로 쏘아 죽이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용히 사는 유대인을 하나씩 하나씩 끌어다가 600만명이나 죽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참혹한 일이 있었는가? 왜 그랬을까요? 이유가 이렇습니다. 히틀러 아버지는 행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물건을 다 팔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니 집을 비웠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아주 가끔씩 집에 돌아 왔습니다. 집을 지키고 있는 그의 아내, 히틀러의 어머니는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서 그만 부정한 생활을 합니다. 돈이 많고 권세가 있는 유대 사람과 불륜의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아들인 히틀러가 보았습니다. 히틀러는 그러지 말라고 눈물로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 생활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유대사람을 미워했고 몇 번이고 죽이고 싶었습니다. 결국은 히틀러가 권세를 잡은 날 유대인들을 무참이 죽입니다. 그것도 600만명을 죽였습니다. 이 얼마나 참혹한 사건입니까? 자녀들이 어렸을 때 그 부모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부모의 죄악 된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오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입니다. 본이 되지 못하는 잘못된 습관이 있으면 회개하고 끊읍시다.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페스탈로찌」의 말대로 사랑이 최상의 커리큘럼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누구인가 라도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그는 참으로 귀중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볼티모어」에 빈민굴이 있었는데, 너무 형편이 어려워서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를 해보았습니다. 아편 중독자며, 알코올 중독자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굴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을 보내 연구한 결과보고서가 이렇습니다. '아무리 기대해 보아도 저 빈민굴은 구제불능임.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전혀 가망이 없음.' 그래서 기다린지 25년 후에 다시 사람을 보내었더니, 소망이 없다고 한 그곳에서 무려 176명이나 되는 학자, 목사, 교육자, 더구나 훌륭한 과학자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고 원인을 조사해 보았더니, 그 속에서 그들을 위해 희생해 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평생을 그들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는데. 그 여인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 구제불능인 빈민굴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기자가 이 여인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때, 불량아들도 귀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그 사람이 그 아이를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구원 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