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4:1~9 | 김남수 목사]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한가지를 구한다면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4:7절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3장을 보면 솔로몬이 21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제일 먼저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종교적 예식입니다. 이렇게 일천번제를 끝내자 밤에 꿈속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열왕기상 3:5) 과연 무엇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솔로몬은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지혜로운(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열왕기상 3:9)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선악을 분별하여 백성들을 잘 지도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이 말씀이 열왕기상 3:10절에 “주의 마음에 든 지라”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지혜란 무엇입니까? 잘 들으십시오. 열왕기상 3:9절에 “지혜로운 마음”은 “든는 마음”을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지혜로운 마음은 “레브 쉬메”입니다. “레브”는 “마음(heart)”이란 뜻이요, “쉬메”는 “지혜롭다. 또는 듣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영어 성경에서는 “hearing heart”, “understanding mind”라고 번역했습니다. 지혜는 듣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듣겠습니다. 따르겠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듣고 행하는 마음이 지혜입니다. 솔로몬 왕은 그러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런 지혜로운 마음을 구해 지혜롭게 백성을 지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 백성들이 대통령을 뽑아 세웠으니, 불통이니 뭐니 비판하지만 말고, 국민의 소리를 듣고 분별하여 수용할 수 있게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합니다.
솔로몬은 자기 개인을 위해 수(장수)도 구하지 않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송사를 듣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혜란 선악을 분별하여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입니다. 이 지혜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마음에 꼭 든다 하시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까지 솔로몬에게 덤으로 주셨습니다.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하며, 기분 좋은지 모릅니다.
지금 남한과 북한이 서로 으름장을 놓고 전운이 감돌고 있으므로, 국민은 불안하며, 여야 정치권은 국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긴다는 교회도 서로 나누어져 싸우고, 고소하고, 물욕과 명예욕으로 타락하여 우리의 마음을 서글프고 암담하게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여야 정치하는 분들과 지도자들이, 교회들이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해 지혜롭게 처신함으로 하나님과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옛날 아라비아의 한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평생을 두고 자신을 즐겁게 해 주던 유명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잘해 나가던 신하가 어느 날은 그만 깜박하여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이에 대노한 왕은 당장 그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신을 위하여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인데 그렇게 죽이기에는 참으로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한가지 자비를 베풀기로 합니다. “내가 이제 너를 죽일 것인즉, 그 죽는 방법은 네가 스스로 택하라” 왕은 신하가 화형을 당하든, 교수형을 당하든, 위든, 스스로 선택하라고 합니다. 형장에 세워놓고 모래시계를 거꾸로 엎습니다. 모래가 밑으로 다 빠지기 전에 어떠한 방법으로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모래시계는 모래가 점점 흘려서 밑으로 내려갑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모래가 다 흘러 내리자 왕은 신하에게 묻습니다. “자 이제 선택했느냐?” 두려움에 떨어야 할 신하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예” “늙어서 죽겠습니다.” 죽는 것이야 마찬가지 아닙니까? 여러분! 지혜로 살 것입니다.
정금과 진주보다도 더 귀한 이 지혜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본문은 네 번이나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지혜의 근본이요 뿌리입니다.
근본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지혜의 창조자란 뜻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잠언 9:10절 상)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잠언 8:13)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3:17, 14~16절을 보면, 17절에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14~16절에 “땅 위 세상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인데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가득한 것입니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성부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또한 지혜를 인격화시키면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골로새서 2:3절에 예수 그리스도안에 지혜나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지혜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혜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알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과 연결되어야만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어야만,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지혜는 부모로부터 옵니다.
오늘 본문 1~4절까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나도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 나도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내 아비의 말을 들으라 하고 훈계합니다.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지혜를 얻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그가 평생토록 경험한 것, 그 중에서도 가장 뼈아픈 것이기 때문입니다. 듣고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한 유언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그는 단지 이 한마디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술 때문에 자신의 전 생애를 망쳤던 것입니다. “술만 아니었더라면”하는 후회가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 소중하고 값비싼 지혜를 아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 아들놈 좀 보십시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그대로 지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는데, 부전자전이라고 그마저 술을 마십니다. 이제 그 집안은 망한 것입니다. 악순환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여서 다른 말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지키리이다”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지혜로운 가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일축해 버렸습니다. 다시 대를 이어 어리석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모름지기 부모의 교훈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의 교훈을 잘 받아들인 사람이 지혜를 얻습니다.
셋째,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지혜를 주십니다.
야고보서 1: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러며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지혜를 얻으려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본문(잠언 4:1~9)에 구하여 “얻으라”고 네 번이나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라(buy)는 것이 됩니다. 지혜는 너무도 소중하고 고귀하기 때문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구하여 얻으라는 것입니다. 지혜의 고귀한 가치를 잠언3:13~17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자는 복되나니,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고,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의 오른손에는 건강과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와 영화가 있다. 지혜의 길은 즐겁고 행복한 다 평강의 길이다.” 무엇보다도 지혜를 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까지 지혜를 구하며 살았습니까?
솔로몬은 이 고귀한 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백성을 공의롭게 재판할 수 있도록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의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소유권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닌 선을 구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 진실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처럼 혼탁한 시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명예욕이나 물욕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눈이 어두어져 자기 욕심대로, 정욕대로 사는 양심이 마비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선을 알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먼저이고, 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순서가 뒤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번영이나 부, 행복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해 주십시오. 선과 악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선을 알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지혜입니다. 도덕성이 먼저이고, 종교성이 먼저입니다. 결코 정치, 경제, 사회가 행복이 먼저 일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주옵소서!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지라, 세상에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혜를 얻었으면, 그 지혜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잠언 4:8~9절을 보면, 지혜를 얻었으면, 먼저 지혜를 “버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한번 얻은 지혜를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라는 말입니다.
또한 “지혜를 사랑하라.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어떤 값을 지불해서라도 지혜를 얻었으면 됐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려도 지혜 얻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다음으로 “지혜를 높이고, 지혜를 품으라”고 합니다. 지혜를 가슴에 품고, 사랑하며, 그를 높이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행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보십시오.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호하고, 지키시며, 높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가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봄교회 성도 여러분! 지혜를 구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지혜가 충만합니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모두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솔로몬이 구했던 그 지혜를 우리에게도 주옵시고, 그에게 내리셨던 넘치는 지혜를 우리와, 이 땅의 지도자와, 우리 온 백성에게 주옵소서! 이 아침에 지혜를 구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