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18-19ㅣ 김남수 목사]
예수님께서는 30세가 되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신 후 본격적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공적사역을 시작하실 때 나사렛 한 회당에서 당신의 공적인 사역의 성격을 밝히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성령의 기름을 부으심으로 죄와 질병과 절망과 죽음에서 인간을 구할 메시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주님께 임했던 기름부음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 아버지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 부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성령님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역사하고 계시며 구원을 베푸시고 계십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성도는 교회에 속해야 하고,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아무리 걸출한 신앙을 가졌다 할지라도 교회를 떠나면 성령의 기름부음은 잃고 맙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모인 교회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첫째로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기름 부으심이 없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이 전파되지 않습니다.
가난에는 영적인 가난과 환경적 가난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영적인 가난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적으로 가난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환경의 부요함을 자랑하면서 행복하려고 애쓰지만 실상은 내적인 영적인 가난 때문에 탄식하며 불행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은 죄책과 절망에 처했으며 허무와 무의미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인 가난에 처한 인간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내적인 궁핍이 사라지고 충만한 기쁨과 평화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 납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면 환경의 가난도 물러가고 맙니다. 성경은 ‘필경은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발은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32: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 가난과 저주가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남한과 북한이 똑같이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북한은 유물사관을 쫓는 공산주의와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 신으로 숭배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 살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탈북하며 남한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은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북보다 약 30배 이상 영적인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부강합니다. 이제 이북도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많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의 몸된 교회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의지할 때 가난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 분명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가난, 환경적인 가난에 허덕이지만, 그러나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하면 이 모든 가난과 저주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역사하면 가난과 저주는 물러가고 맙니다. 그 기름 부으심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역사합니다. 우리가 성령과 교통하며 살 때 진정한 자유를 얻으며 영적으로 환경적으로 잘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인간은 어떤 포로가 되어 있을 까요? 죄악의 포로가 되어 있으며, 미움과 분노, 공포와 좌절감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로 인해 진정한 자유와 평안,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도덕적 타락으로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이 민족의 살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도덕적 타락에서 해방 받을 수 있을까요? 인간은 아무리 힘을 쓰고 애써도 인간의 힘만으로도 이런 억압에서 해방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간절히 간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성경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해방하시고 자유케 하는 영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성령님!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성령님! 미움과 분노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성령님! 공포와 좌절에서 해방시켜 주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성령께서 모든 억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기름부음에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교회의 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또한 기름부음의 역사는 성도들의 모임 목장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기도드리면 기름부음의 역사로 해방과 자유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눈먼 자가 다시 보게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인간은 창조 시 하나님과 교제하며 대화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하자 영이 죽고, 영안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은 육안으로 환경만 바라볼 뿐 영적인 세계에 대한 시력은 상실한 체 세속적인 존재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의 눈이 멀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인격의 수양을 많이 쌓아도 영의 눈을 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에 나와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기도하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로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나라를 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하고, 영의 눈이 뜨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회개하고 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영의 눈이 열리면 누구든지 가치 있고 영생을 체험하면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충만히 받으면 받을수록 영안이 더욱 더 밝아져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사역을 보면 육신의 눈먼 소경도 고쳐주신 일이 많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에게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눈에 발라 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는데 믿고 순종하여 가서 씻었더니 치료되어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요9:6~7)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고쳐주십니다.(요 9:31)
우리가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서 치유 성회를 할 때 한 번 집회에 2000명의 환자가 치유되거나 호전되고,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는 기적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해 주신 주님의 역사는 오늘날도 실제 장님이 눈을 뜨게 하고, 영의 눈을 뜨게 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넷째로 눌린 자에게 자유함을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무엇에 눌려 살고 있습니까? 미움과 분노에 눌려 있으며, 공포에 눌려 있습니다. 지금 전쟁의 공포, 불황의 공포가 무섭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좌절감에 눌려 있습니다.
세상은 산업화되어 전문화됨으로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억압이 짓누른다 할지라도 전능하신 성령의 기름부음이 역사하시면 우리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어 생명력 있는 생명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각종 질병에 눌려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을 눌러서 병들게 합니다. 모든 병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병은 마귀가 누르므로 발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사렛 그리스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 듯 하시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고 했습니다.
마귀가 눈을 누르면 눈에 병이 생기고, 위장을 누르면 위장에 병이 생기며, 머리를 누르면 머리가 아픕니다. 인간을 짓누르고 병을 가져다 준 원수 마귀를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고 마귀에게 눌렸던 병은 치료됩니다.
여러분은 큰 돌에 눌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누런 풀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미움과 분노, 공포와 좌절감, 마귀와 각종 질병에 눌려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돌을 치워주실 분은 오직 주님과 성령님 밖에 없습니다. 돌을 치우면 눌려 있던 누런 풀이 푸르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는 것처럼 누구든지 교회에 나와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면 억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결론적으로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해란 구약의 희년을 말하는데 이스라엘에는 50년마다 한번 씩 돌아오는 희년이 있었습니다. 희년에는 속죄의 제사를 드린 후에 전국에 자유가 선포되어 종도 놓아주고 빚도 탕감해주며 전지 잡힌 것도 돌려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희년을 전파하려 왔다고 하셨는데 주님께서 사역 기간 동안에 종들을 다 해방시켜주고, 빚도 탕감해 주며, 전지 잡힌 토지도 다 돌려주었을까요?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는 의미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아담이 타락한 후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시겠다는 의미의 말씀인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은 주님과의 교제, 영원한 생명, 에덴의 축복, 치유와 건강을 잃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과의 교제, 영생, 에덴의 축복, 치료와 건강을 회복시켜 줄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주님을 믿게 되면 첫째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둘째로 영생을 얻고, 셋째로 마귀의 눌림에서 해방을 받고, 넷째 건강한 가운데, 다섯째 에덴의 축복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주님도 모르기 때문에 인본주의를 신봉하며 자기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만 살아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다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위해 교회 안에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 2:9~1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총 속에 들어가 살 수 있으며, 잃어버린 생명과 건강을 되찾는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간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고후6:2)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기름부음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나옴으로 하나님께 겸손히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통해 큰 은총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