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3:1-11 ㅣ 김남수 목사]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내용입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의 관원이요,(오늘날 같으면 국회의원이며 대학교수쯤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공회의 의원으로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지성을 대표하는 존경받는 유대인의 선생으로 교양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사람들이 갖고자 하는 것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밤에 비밀히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아마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또한 낮에는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둘려 쌓여있기 때문에 밤에 찾아와 예수님과시간을 내어서 오래 대화하기 원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고, 예수님께서는 그를 환영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유대인의 율법학자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격을 갖춘 그가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던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오신 선생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이며, 참 선지자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표적들을 조사해보고 얻은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관원이지만 정치문제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 문제와 구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 온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본 예수님에 대한 의견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지만, 예수님은 화제의 방향을 돌려 니고데모의 구원문제와 그의 필요를 직시하시고 거듭남, 즉 중생의 교리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보실 때, 세상적으로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시급하고 필요한 것은 거듭나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고 5절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신 이 말은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천국시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천국시민이 될 수 있다고 거듭남의 필요성을 니고데모에게 강조하여 일 깨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 “중생”이란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 봅시다.
1) “거듭난다”는 문자적인 의미는 “위에서 난다”, “하나님께로써 다시 난다” 즉, “새롭게 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하나님에 의해 다시 새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2) 교리적인 측면에서 중생이란?
- 한 개인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의 시작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주도적인 생명의 역사가 한 개인의 심령에 나타난 출발점을 중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식물로 예를 들면 종자 즉 씨앗이 밭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씨앗은 곧 생명을 심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옥한 좋은 땅이라도 거름 주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씨앗이 들어가지 않으면 100년이 지나도 풀 한 포기 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의롭고, 선해도 나의 선행과 공로, 노력을 통해 생명의 역사가 일어 날 수없습니다. 위로부터 생명이 임하는 작용이 있어야(하나님의 생명이 심어져야)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중생은 아기가 단 한번 태어나듯이 일생에 단 한번 이루어지는 단회적 사건입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알고 믿어온 구원관과는 전혀 다른 구원의 도리를 예수님께 듣고 무슨의미인지 전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소경인 니고데모는 예수의 영적인 말씀을 이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육신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인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야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어디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그것이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 놓고 예수님께 설명을 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4절 ”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님께 거듭나는 방법을 질문한 것입니다.
2. 자신의 영적 무지를 시인하며 설명을 요구하는 니고네모에게 예수께서 중생의 방법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5절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중생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물은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물 세례를 설명 드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의말씀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고 거듭납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 마음 속에모셔 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이 내 심령에 심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교회 앞에서 고백하면 교회는 그 신앙 고백을 인정하고 물로 세례를 줍니다.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하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세례를 조금 더 자세히 말씀 드리면, 물 속에 잠기거나 물을 머리에 뿌리는데, 이것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셔 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는것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① 연합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이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을 때, 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연인인 옛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 지낸바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가 없으신의인 이십니다. 죄의 값이 사망이기 때문에 죄인이 죽는 것입니다.
죄 없는 의인은 죽을 수 없는데 왜 의인이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까?
우리와 연합이 되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자신이 취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값으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죄의 빚을 다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죄인인 우리도, 즉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장사 지낸바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값이 다 갚아졌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 없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②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과도 연합이 되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때 영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몸도 예수님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산 것을 외적인 의식으로 표시한 것이 물세례입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표로신앙을 고백하면서 행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고 영접하였으면 구원받고 거듭났기 때문에 세례나 학습문답을 미룰 필요가 없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 받으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을 미루는 것과 같습니다.
이집트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가에 가 그 물에서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사고행전 8:35~38)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날 3,000명이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2:37~41)
빌립보 간수는 지진이 일어난 밤에 그와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밤에 세례를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6:30~33)
그런데 육의 상태에 있는 니고데모는 세상적으로 교양과 학식이 출중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가르침에는 놀랄 뿐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듭나야 영의 눈이 뜨여 영적 진리가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마음을 아시고,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5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나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6절: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자연인은 육이 있는데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없기 때문에
-7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다시 새롭게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겠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면서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것을 바람에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성령과 바람은 헬라어나 히브리어로 다 똑 같은 단어입니다.
성령과 바람의 비슷한 점, 같은 점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바람(태풍)을 우리 마음대로 다루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가지와 나뭇잎이 흔들리고 우리 촉감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임하시고, 역사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의 결과로 기쁘고, 즐겁고, 거듭나고, 병이 낫고 기적이 일어나는 등 뚜렸하지만 어떻게 역사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아무도 볼 자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므로 성령님의 임의대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중생하는 것은 눈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바람이 불면 그 존재를 현상을 보고 아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 사람은 신비하게 인격적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고 중생의 결과를 앎니다.
거듭나면, 이전과는 다르게 죄에 대해 민감해지고, 성경을 더욱 알고 싶고, 하나님의 은혜를더욱 사모합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전과 비교해 볼 때, 생각이나 느낌이나 생활에 변화가 점점 생기는 것입니다.예수님의 12제자를 통해, 이 변화된 몇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나 한 사람의 변화가 가정을 달라지게 하고, 직장과 사회를 달라지게 합니다.
오직 중생, 거듭남, 여기에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믿으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 밖에서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시간에 마음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드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에 약속대로 들어오십니다.
예수님을 모셔 들이십시오.
이 시간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구원의 확신은 다음 성경 말씀을 찾아보십시오.
-요한복음 1:12절
-요한복음 6:47절
-요한복음 10:28~29절
-로마서 8:38~3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