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13, 골로새서 1:4-8ㅣ 김남수 목사]
우리가 잘아는 사랑장인 본문 고린도전서 13:13절은 “믿음,소망,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라고 기록했습니다.
주 후 120년경 8월 1일 하드리안 황제 때,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큰 박해가 있었습니다.
이 때 로마에 살던 어린 세 자매가 순교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세 자매의 어머니는 과부인데, 신심이 높은 분으로 큰 딸의 이름은 피데스(믿음), 둘째 딸의 이름은 스페스(소망), 셋째 딸의 이름은 까라타스(사랑)이었다고 합니다.
이 어린 세 자매가 붙들려와서 신앙을 버릴 것을 종용 받았으나, 12살인 큰 딸 믿음은 “나는 주님을 믿을 뿐입니다”라고 했고, 10살인 둘째 딸 소망은 “나는 천국을 바라볼 뿐입니다.”라고 했고, 9살인 셋째 딸 사랑은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라고 대답한 후 셋이 나란히 참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기독교회 내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를 그리스도인들이 붙잡아야 할 가장 큰 신앙의 덕들로 가르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삼덕은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교회다움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실현해야 할 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 사도바울은 작은 공동체인 골로새 교회 안에서 이 세가지 덕이 있는 것을 보고, 감사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이 세가지 덕목을 통하여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본질적인 특성들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1.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골로새서 4절에 보면 사도바울은 먼저 “…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 믿음…”을 인하여 감사하고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오늘날은 믿음이라는 단어가 믿음의 대상에 대한 강조 없이 맹목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엇을 누구를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대상이 신앙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하나님만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유대교에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가 믿고 있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이 예수님을 구주로 곧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이 감사했던 것은 골로새 교인들이 오직 이 예수 안에 믿음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구원의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사람이 진정한 보람된 인생을 살려면 영원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영원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먼저 죄 용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되었다.”
이런 자긍심이 얼마나 큰 축복인줄 아십니까?
그럴 때 여러분은 죄를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기쁨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권능 있는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인식하면 성령님께서 보혜사로써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게 되고, 따라서 어떠한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치료를 굳게 믿게 됩니다.
성경은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태복음 8: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고난 당하셨나니… 그 사랑 고마워라” 여러분이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치료에 대한 믿음의 강물이 넘쳐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굳게 믿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금도 거짓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사랑입니다.이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 용서와 성령충만과 치료와 축복과 영생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의 공동체라고 할 때, 여기서 사랑의 대상이 성도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물론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골로새서 1장은 분명하게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4절에 “…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우리의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사랑은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열매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그분에 대한 애정을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로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 대한 사랑은 가시적으로 보여야 하기에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고 부릅니다마는 사실은 성경에서 가장 본격적인 “사랑장”은 “요한일서 4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은 네 가지 요점으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8절에 “하나님(성부)는 사랑이심이라”것입니다.
둘째는 9절에 “이 사랑이 독생자(성자)를 내어 주신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13절에 “성령님을 통해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장의 결론이 마지막에 기록됩니다.20~21절에 “우리 안에 거하는 사랑을 형제들에게 나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형제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 제일 먼저 표현해야 하는 곳이 교회이고, 그 대상은 성도이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교회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이 되는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신 사랑입니다.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심령에 부어져 불타오르면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능력도 이웃을 위해 희생하며 줄 수 있습니다.
그제 하준이 생일잔치에 반 친구들과 학부모님을 초대하여 목장원들과 함께 4층 만나실 모든테이블이 가득하도록 음식을 차려 놓고 생일축하 파티를 했습니다.
이웃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파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34~35)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누가복음 6:32,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그들의 성공을 위해 살아갈 때, 오히려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과 소망이 넘쳐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기쁨과 평안과 소망을 원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교회는 소망의 공동체입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인들에게 세 번째로 감사한 것은 “그들이 가진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5절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은 복음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온 것이라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이서 6절에는 “이 복음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우치는 그 순간부터 그들이온 천하에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소망의 사람이 되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망은 일시적이고 무너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준 이 소망은 5절의 증언처럼 “하늘에 쌓아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마태복음 6:20)고 하셨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소망은 세상 살아가 끝나는 날 끝날 수 밖에 없는 소망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복음의 소망은 이 세상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저 영원까지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국민에게, 스승은 제자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이웃은 이웃에게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소망은 행복의 꽃이 피게 하는 단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소망, 영원한 소망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와 남편의 깊은 사랑을 인식하고 있는 남편과 아내는 희망찬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도 환경도 아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치문제도 사랑이 역사해야 합니다.하나님이 없는 지성, 하나님이 없는 정치 철학은 결국 우상 숭배로 인도합니다.
지성과 철학이 범람한 도시 아테네성은 우상으로 가득 했습니다.
아테네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로마도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테네와 로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전했습니다.예수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세례를 받은 정치가는 진전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국민을 사랑하여 욕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할 것입니다.
또 사랑의 세례를 받은 국민도 정치가를 사랑하여 성숙한 의식의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성경은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한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의 세례를 받도록 위해서기도합시다.
이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오늘날 사랑의 장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원한 사랑, 위대한 참사랑을 우리에게 주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정치가도, 국민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이 사랑을 절실하게 체험한 사람이 이웃과 조국을 진실하게 사랑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고 사랑의 기름부음을 하나님께 받으십시다.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하게 체험하고 믿음과 소망을 얻어 서로 돌아보고, 서로 섬기기 위해희생하고 노력하는 우리 예봄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축복합니다.
우리 예봄교회, 특히 목장교회가 이런 신.망.애 공동체로 굳게 세워져 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