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1-6 ㅣ 김남수 목사]
믿음이란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이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히11장6절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믿지 않으면 모두 허사가 됩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열심히 들으시고 믿음의 법칙을 깨달아 부정적인 환경과 생각을 주님께 맡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을 터득한 우리는 언제나 삶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첫째로 삶 속에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는 인도네시아에 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아브라함 알렉스 목사님이신데 목사님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태어났습니다. 전신이 다 비뚤어져 생활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알렉스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고 가셨기 때문에 아들의 병이 어떠한 형태라 할지라도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고 기도하면 치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완전히 치료받고 건강한 모습의 정상적인 아들이 된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매일 같이 기도했지만 아들이 낫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괴롭고 슬프기도 했지만 계속 기도했습니다.
네 달이 지나고 나서 아침에 아들 방에 들어가자 아들이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왠일입니까? 아들이 완전히 나아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 몸이 뒤틀리고 삐뚤어진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기적은 4차원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적을 체험하고 싶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4차원의 영성인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브라함에게 바라보게 하시고 그 다음에 믿음을 주셨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4차원이지만 3차원인 현실을 바꾸는 믿음과 연결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히 11:1~2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이며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심었으면 거둘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둡니다. 이것은 자연법칙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심었으면 반드시 거둘 것을 기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씨를 심어 놓고 수확을 얻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 농부를 보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전부도 드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 기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갈 6:7~9절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령의 법으로 심고 거두십시오. 당신은 축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또한 기도의 내용을 발전시키십시오. 받은 줄로 확신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게 될 때까지 기도하였으면 이제는 기도의 말을 달리해야 합니다. 받은 줄로 확신하고 난 다음에도 계속해 ‘낫게 해 주십시오.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한다면 이것은 믿음이 없는 기도입니다. 이미 구했으면 이때부터는 ‘하나님께 나를 고쳐주셨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이미 나았으나 증상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성령님이 나았다고 확신을 주시는 데도 자꾸 ‘고쳐주옵소서. 고쳐주옵소서.’하면 ‘이 사람아 고쳐주었는데 잔소리가 많으냐.’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불신앙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바라보고 믿음을 가질 때 사탄은 환경을 이용하여 믿음을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니 두 번째로 부정적으로 유혹하는 환경과 싸우십시오.
눈에 보이는 환경은 우리를 포기하게 하고 절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코 여기서 멈추고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대상들입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끝까지 싸워 이기는 사람들에게 믿음 가운데 바라본 것들은 실상이 되어 나타납니다. 이를 위하여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사실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려해도 세상이 인정하는 상식과 지식은 우리를 큰 절망으로 데려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이겨낼 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뜨겁게 부르짖는 기도로 불신앙의 얼음벽을 녹이십시오. 성경은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안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기도하고 구할 때는 받은 줄로 믿어질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구할 때 받은 줄로 믿는 마음과 응답사이에는 두꺼운 얼음벽이 있습니다. 이 얼음벽을 녹여야 합니다. 뜨거운 기도의 열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뜨거운 기도의 열기로 기도하면 이 얼음벽은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도하다가 낙심하고 그만 주저앉아 버리고 평안과 확신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이 얼음벽을 녹이지 못해서 입니다. 얼음벽이 녹을 때 응답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음에 확신과 평안이 옵니다. 믿음의 기도는 절대 절망을 절대 희망으로 바꾸는 믿음의 매개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렘33:3절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시145:19절에도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확신과 평안이 올 때까지 주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뜨거운 소원을 갖고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항상 믿음으로 사는 법을 학습하십시오.
인간은 유한한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새롭게 마음을 먹고 다시 일어서려 하지만 또 다시 쓰러집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돌보시기 원하십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씀을 주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믿음의 동반자들을 우리에게 붙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과 교제하며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무디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 성장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무디는 거듭난 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기로 서약했지만 늘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디는 ‘자신은 길가에 뿌려진 씨처럼 말씀의 씨가 자라지 못하는 마음 밭 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탄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17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무디 선생의 마음에 믿음과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믿음을 붙잡아 주며 믿음이 흔들릴 때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믿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는 방법을 찾은 무디는 그날부터 매일 새벽마다 성경을 묵상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무디는 세계를 복음으로 흔드는 신앙의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2. 또한 성령을 통해 우리는 믿음의 도약을 할 수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케이트에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 경험을 웨슬레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마지 못해 친구의 강요에 의해서 올더스케이트 집회에 갔습니다. 9시 15분 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변화를 설명하는데 내 마음속에 이상한 뜨거운 불이 임하면서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용서를 받고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마음속으로 확인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웨슬레에게 ‘당신은 무슨 힘으로 이렇게 위대한 전도를 할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나는 올더스케이트의 체험이후 알게 된 성령의 불길을 언제나 마음에 품었기 때문에 그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다만 진리를 아는 것으로는 우리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깨달아지는 체험이 있어야 어떠한 시련과 환란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성령과 함께 교제하며 믿음의 키를 높였습니다. 우리도 웨슬레 목사님처럼 마음을 늘 성령님의 뜨거울 불길로 채웁시다. 4차원의 믿음은 성령님에 의해서 성장합니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 내는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이며 성령님이 만들어 주시는 작품입니다.
3. 또한 믿음은 사람들이 함께 연합할 때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너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장 모임에 함께 모일 때 주님께서 함께 임재 해 계십니다. 그리고 친밀하신 주님을 목장모임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하늘나라를 확장하고 세상과의 싸움을 더 쉽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우리 자신이 믿음의 힘이 되어 많은 영혼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가 월트리드 미육군 병원에서 별세하기 얼마 전에 빌리그래함 목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30분동안 대화를 하셨습니다.
이후 목사님이 떠나시려 하자 이이젠화워 대통령이 목사님을 붙잡았습니다.
“목사님! 저와 조금만 다 이야기하고 가십시오. 함께 있어 주세요”
“그러죠. 그런데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목사님! 난 아직 하나님을 만날 확신이 없어요. 날 좀 도와주시겠어요?”
“우리가 죄 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그리고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손을 잡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면서 빌리그래함 목사님께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을 만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믿음의 동역자를 찾으십시오.
그들의 기도의 도움을 얻는 것도 지혜입니다.
연합된 믿음의 기도는 확신과 평안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으로 믿음의 학습은 평생 학습입니다.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믿음으로 사는 습관이 생겨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믿음의 성장 법을 찾고, 성령과 함께 교제하며, 믿음의 키를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믿음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은 한 순간으로 이루어지는 능력이 아닙니다. 평생토록 학습하고 배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4차원의 믿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라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여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며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