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4-7, 살전 5:16-18 ㅣ 김남수 목사]
현재는 그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회가 분업화되고 복잡합니다. 사람들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스트레스의 중압감으로 심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해답을 오늘 본문에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교훈을 신앙생활에 적용할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라도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평안과 쉼이 있을 것이고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잘사는 신앙생활은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바울은 일관성 있는 삶의 태도로서의 기쁨을 강조합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기쁨이 아닌 본문 말씀 그대로 항상 기뻐하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이 이러한 인생을 살기 원하셨으며, 자신 안에 있는 기쁨을 선물로 주시기 소원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바울 사도는 성령의 열매 중의 하나가 희락 곧 기쁨이라고 하였으며, 옥중에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도 염려하지 말고 주님의 기쁨 가운데 살아갈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있을지라도 교회가 기쁨의 공동체로 굳게 서있다면 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먼저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 중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한때 친밀한 인간관계로 기쁨을 나누던 사람들이 서로 등져야 할 때 우리는 기쁨과 살맛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은 교회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가 빌립보 교회 내에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2~3)라고 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갖지 못한 어떤 성도들 간의 갈등이 빌립보 교회에 부담을 주고 있었던 것을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한 마음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빌4:5절에서 바울은 이런 인간관계의 갈등에 대한 처방으로 관용을 강조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여기서 ‘관용’이란 말은 달리 말하면 “부드러운 절제”를 뜻합니다. 관용을 현대영어 성경에서는 gentleness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관용한 사람이 젠틀맨(gentleman)인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친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우리의 관용을 나타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4절의 권면을 보십시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일시적으로 친한 사람들에게만 느끼는 감정적 환희를 강조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 바울은 여기서 ‘주안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왜 ‘항상’이란 말을 강조했을까요? 지금 사도 바울은 일관성 있는 삶의 태도로서 기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우리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에 유연성 있는 태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음, 기쁨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상황이 주는 염려를 극복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못지않게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있다면 염려들입니다. 6절에 사용된 ‘염려’라는 단어는 본래 ‘마음을 나눈다’를 뜻합니다. 마음이 나누이고 찢어지면 걱정이 생깁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표류하면서 마음을 잡지 못한 상태, 그것이 바로 염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염려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적인 처방은 한마디로 기도입니다. 염려할 모든 것을, 기도할 모든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단순히 기도할 뿐 아니라 간구하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놓고 간절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우리의 기도는 자연히 간구가 됩니다. 약5:17~18절에서 우리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삼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간절히 간구하면 태풍도 물러갑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고 간구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 그 자체는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듭니다. 일단 염려 그 자체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6절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그럴 때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관계적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야 하며 둘째로 염려를 기도로 주님께 맡기고 염려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잘사는 신앙생활 태도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세상 사람들과 세상일들에 보내고 생각하고 마음을 쏟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의 대화를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는 크리스천의 특권이요, 복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대화하기 원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면 더 많은 시간을 대화하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끊임없이 대화 나누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바로 대화하고 함께 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교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항상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넘치게 주십니다.
기도가 잘 사는 신앙생활 태도인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야 우리의 삶이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면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우리는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가득해 참으로 윤택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가득해 참으로 윤택한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둘째로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베풀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을 마음속에 소유하면서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더 나아가서 기도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 줍니다. 기도를 통해 귀신의 역사가 떠나갑니다. 귀신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패배했고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귀신을 대적하고 쫓는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울과 불안과 좌절과 슬픔 가운데 있을 때, 절망이 올 때, 우리는 귀신의 역사인 줄 알고 단호하게 대적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울하게 하는 귀신아! 불안을 가져오는 귀신아! 두려움을 주는 귀신아! 슬픔을 주는 귀신아! 절망으로 주는 귀신아! 물러가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가라!’고 명령기도하심으로 귀신을 쫓아내십시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귀신을 붙이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활 속에 많은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슬픔과 절망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귀신을 쫓아내야 참 자유를 얻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넷째로 우리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생활에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 법칙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이 통하는 전화선과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줄을 펼쳐 놓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하셨고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고 작은 일에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과 의논해야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위하여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전 세계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과 총명을 주셔서 올바른 선택과 판단을 내리게 해 주실 뿐 아니라 안 될 일은 막아주시고 될 일은 열어주십니다. 인도와 응답해주시므로 위로와 평강은 우리 가운데 채워집니다.
셋째로 잘사는 신앙생활 태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뜻합니다. 성경은 좋은 일에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에도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불행 중에도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함과 관련한 켐펠 몰갈 박사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어느 주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고 귀가하는 길에 강도를 만나고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몰갈 박사는 상처투성이에 빈털터리인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많이 얻어맞았으나 죽지 아니했으니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천국신앙을 빼앗기지 아니했으니 감사합니다. 얻어맞는 사람이 되었고 강도가 되지 아니했으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경과 운명을 주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일을 당해 환경만 바라보면 원망과 불평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경 그 자체를 바라보며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하며 이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운명과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현재 제 환경엔 스산한 바림이 부는 것같이 고통스럽지만 저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이를 통해 신앙을 성찰할 수 있었고 변화 받을 수 있었습니다.주님! 감사합니다.’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먼저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10년, 20년 전 괴롭고 고통스럽게 했던 그 일이 현재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고 지금은 합력하여 선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 때문에 우리는 불행을 당할 때 과거의 체험을 확인하며 미래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감사하면 마귀는 실망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감사하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발판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불평하기 전에 이유 없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상천외한 곳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서 찾고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가 있어도 이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