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목사]
오늘 아침에는 셀 교회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말씀 드리므로, 셀 교회가 무엇인가에 관한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다음에는 건강한 셀 교회의 실천사항에 관하여, 지난 주일에 용서와 사랑하는 가족에 관하여 말씀 드렸는데 오늘도 계속해서 건강한 셀 교회가 되기 위한 실천사항인 “받아주는 가족과 격려하는 가족”에 관해 말씀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A.셀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 몸이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몸의 기본단위가 세포인데, 영어로는 세포가 Cell입니다. 세포들의 모임이 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므로 몸인 교회의 기본단위가 셀, 기초공동체가 셀인 것입니다. 이 셀을 교회의 기초 공동체라고 합니다. 기초공동체가 셀인데, 셀 즉 소 그룹이 적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셀 자체가 작지만, 하나의 작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셀이 가정교회처럼 독립되어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른 여러 셀들과 연합되고 연결되어, 대 그룹, 큰 회중이 됩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집에서 소 그룹 셀로 모였고, 또한 여러 셀들이 즉 전체 회중이 대 그룹으로 성전에서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셀 교회는 소 그룹인 한쪽 날개와 대 그룹인 한쪽 날개, 즉 두 날개 가진 교회를 말합니다.
“셀 교회는 3C”의 기본 구성 요소로 이루어 집니다. 3C는 영어의 첫 자인데, ①셀(Cell)의 C ②회중(Congregation)의 C ③ 축제(Celebration)의 C 3C입니다. 셀은 각 가정에서 모여 교제와 예배를 드리고, 회중은 대 성전에 모여 축제 예배를 드립니다.
셀, 가정에서 모이는 소 그룹에서 친밀한 내재적인 하나님을, 축제 예배 때는 하나님의 영광과 초월적인 위대하신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셀 그룹의 성경적인 배경은,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모델을 근거로 합니다.예수님은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부르셨으며, 이 12제자들이 예수님의 셀 그룹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셀 그룹 전원에게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서라고 명령하셨으며 세계 복음화의 전략을 분명하게 제시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셀 교회는 “오라”는 구조가 아니라, 세상으로 “가라”는 구조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어디나 쉽게 갈 수 있는 기동성이 뛰어난 작은 교회입니다.
초대 교회 셀 그룹 멤버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그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1~4,15~21)
셀 그룹들은 교회가 팽창해 감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하며 체험했던 대로 초대 교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예수님과 함께하여 체험한 간증을 듣고, 또한 사도들이 간증한 것과 그의 가르침을 받는 대로 서로 돌아가며 집에 모여 함께 찬송하며, 기도하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각 자정에서 돌아가며 셀로 소 그룹으로 모인 것입니다. 셀 그룹은 친밀한 공동체가 형성되어, 교제에서 나온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300년 까지는 각 집에서 모이는 셀 그룹 즉 가정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대표로 하는 보편적인 구조였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모인 골로세 교회(몬 1:2), 빌립보 교회를 탄생시킨 루디아의 집에서 모인 교회(행16:40), 부르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인 에베소 교회(고전 16:19) 등 모두가 집에서 모인 가정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 대제의 종교 자유의 선언으로 카타콤과 가정에서 모인 예배가 대성당에서 드리는 예배로 변화되었고, 친밀한 공동체와 영성의 상징인 주류를 이루었던 가정 교회가 사라졌습니다.
종교개혁의 큰 물줄기가 중세의 대 교회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종교 개혁 시대 모라비안 교도들은 초대교회처럼 가정교회에서 모였으며 세계 선교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는 가정에서 모이는 소 그룹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요한 웨슬레가 사용하여 큰 부흥을 일으킨, 홀리클럽과 속회, 벤드는 셀 그룹이 기본구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회들은 셀 교회들입니다. 릭 웨렌 목사님이 담임 목사님인 “새들벡 교회” “윌로우 그릭교회”, 콜롬비아의 “1 CM교회”-50,000 개의 셀을 가진 교회, 아프리카의 “WICM 교회”- 가장 강력한 셀교회입니다. 초등학생들도 귀신을 쫓습니다.셀 교회의 성경적인 배경과 역사에 관하여 간단히 말씀 드렸습니다.
또한 셀 교회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역자입니다. 이를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도 하는데, 사제들과 목회자들의 손에만 있던 사역을 모든 성도들에게 되돌려 주어 성도들이 사역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만인 제사장이기 때문에 제 1종교개혁은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진리를 회복했습니다. 신부의 중재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제 2종교개혁은 만인 제사장이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명령에 따라 누구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서로 섬기며, 형제 자매를 격려하고 서로 세워, 그리스도인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신도들에게 다시 사역을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이를 제 2의 종교개혁이라고 합니다. 사역이 여러분의 특권이니 모두 교회를 세우시는 사역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전임사역자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
엡4:11,12 절에 보면 5중사역자(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교사)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즉 성도들을 훈련하고 무장시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임사역자는 성도들을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는 일은 성도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예수님의 전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셀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가 되어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님은 신랑, 성도는 신부이며, 서로서로는 형제자매입니다. 지난주 일에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려면, 육신의 가정이든 영적인 가정이든. 영적인 가정, 교회든 서로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도 이어서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이 되려면, 서로 받아주고 서로 격려하는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B. 그러면 이제부터는 받아주며, 격려하는 가족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I. 받아주는 가족
“누구라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은 앞으로 예봄교회를 건강하게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바울은 브로스길라와 아룰라 부부집에 있는 교회를 위시하여 로마 교회에게 전도에 힘쓸 것을 격려하면서 교회가 더 많은 이방인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받아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는 새롭게 만난 이웃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 들어야 할까요?
1. 주님은 아무 조건 없이 받아 주시고 용납했습니다.
바울은 롬15: 7절에서 우리가 서로 수용하기 위한 출발 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심과 같이 서로를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그가 어떻게 우리를 수용하였습니까?
한마디로 “무조건”입니다 예수님은 인종, 피부색깔,빈부귀천, 유무식 상관없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고, 사랑하시고 , 십자가에 죽어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이 은혜를 아는 자들이 되었다면, 이제 우리도 우리의 이웃을 조건 없이 받아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받아 드립시다.
2. 이웃을 조건 없이 수용하려면, 그들의 연약함이 눈에 보일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연약함을 우리가 담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슨 뜻 입니까?
내 이웃의 연약함을 발견했을 때 “저 사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하지 말고 “그래서 저 사람 밑에는 내가 필요 하겠다”고 마음 먹으라는 것입니다.그의 곁에 서서 그의 조력자가 되어 섬김으로써 그를 유익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태도야 말로 부부관계의 본질이요, 가족이 존재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에 연약함은 인간됨의 피할 수 없는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건강한 가족은 상처주지 않는 관계가 아니라 상처까지도 끌어 안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가정입니다.이것은 건강한 교회, 셀 그룹에도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3. 큰 그림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웃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삶을 살기 위해 또 한가지 필요한 것은 큰 그림을 보는 습관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때 우리가 제일 쉽게 보이는 반응이 무엇입니까? 비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그리스도 인이 하는 일은 어떤 프로젝트의 성취가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곧 우리의 프로젝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웃의 믿음을 세우고, 그리하여 공동체의 믿음을 세우려면 다시 말해서 더 큰 목적을 실현하려면 자신의 좋아함 안 좋아함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의 말을 빌리자면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관용을, 그리고 모든 일에 사랑으로” 임해야 합니다.
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작은 불만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기호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 이웃들이 구원받고 교회의 건강한 지체가 될 수 있다면 내 생각도 언제든지 유보하고, 이웃을 받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Ⅱ. 격려하는 가족
2002년 동계 올림픽 때 인터넷에 이런 격려의 글이 실렸습니다.
“반칙으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신이 슬리자 입니다.
당신에게 우리 민족의 마음이라는 메달을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을 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10,000m에서 1등으로 골인하고도 실격한 김동성 선수에게 바쳐진 인터넷에 있는 어느 청년의 격려의 글입니다. 김동성 선수는 아마도 한국 스포츠 사상 실격하고도 국민적인 격려를 가장 많이 받았던 선수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가 각 단체로부터 받은 격려금은 차치하고도 전달 받은 금메달만도 8개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격려를 받은 소감을 그는 “ 나는 사실 행복한 8관왕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트랙에서 1등으로 입상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금메달을 기대한 그가 실격을 선언 받는 순간 보인 의기소침한 모습과 김포공항에 귀국하여 체육관계자와 오빠 박수부대의 꽃다발에 둘려 싸여 웃음짓던 행복한 표정을 볼 때, 우리는 가히 “격려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히10: 23,24절에서 “어떤 상한 가운데서도 믿는 도리의 소망은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믿음을 가진 후 고난에 직면해 있었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고난의 종류는 달라도 1세기 이상으로 훨씬 복잡한 21세기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낙심할 이유만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격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규칙적인 격려의 기회를 만드십시오우리가 어떤 사람은 격려하고자 한다면, 우선 그를 만나야 합니다.
특히 한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세워주기 위해서는 일회성의 만남이 아닌 지속적인 만남 규칙적인 만남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소 그룹모임, 셀 모임과 같은 상황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이런 개인적인 격려를 나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 입니다.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무서운 신앙의 핍박에 직면하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시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규칙적인 만남”에 있습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거의 날마다 모였고, 그 모임에서 행하는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고”말합니다.
오늘의 21세기는 1세기의 그리스도인 보다 훨씬 더 복잡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이 여러 징조들을 볼 때, 1세기 보다 더 가까이 와 있습니다.그런 만큼 우리에게는 더욱 규칙적인 성도의 모임이 필요합니다.
2. 격려가 가진 생산성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모임을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대화의 내용을 서로간에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무슨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요?
정치 이야기? 이 역시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모임의 본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사업 이야기? 이 역시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모임의 본 주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모임이 단순히 사람과의 만남이 아닌 하나님과의 만남이 전제된 것이라면 모임의 주제로 적합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0장이 그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22절은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3절은 소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없이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절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이는 우리의 모임이 의미 있는 모임이 지속될 수 없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일 때마다 믿음을. 소망을 그리고 사랑을 격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3, 격려의 모범을 찾으십시오
히10: 25절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라고 가르칩니다.
나쁜 습관을 본받지 말고, 극복하라는 말입니다.그러면 격려의 좋은 모범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가장 좋은 모범입니다. 예수님을 12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신 수 그들과 규칙적으로 함께하며 하나님 나라 진리를 나누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앞두고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사람의 본을 보이시며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격려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의 이런 격려를 받으며 참다운 제자로 성숙할 수 있었고 마침내 그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대한 격려자이셨습니다.
또한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격려자가 있었다면, 바울 사도 입니다. 바울 서신은 격려의 메시지로 꽉 차있는데,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격려자 바나바를 만난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독교를 핍박한 바울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그의 변화를 보증한 사람은 바로 바나바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청년 바울을 믿어주면 “함께 일하자”고 격려한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그뿐 입니까?
그는 마침내 선교의 지도력을 바울에게 위임하고 조용히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이름처럼 “격려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바울은 이런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격려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격려를 받아본 사람만이 격려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예봄교회 성도들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서로 복음 안에서 격려를 나누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우리 서로 격려하십시다.
지금까지 격려를 잘못한 과거를 회개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서로 격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