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1-12 ㅣ 김남수 목사]
1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리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에수께로 올새
4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설교전문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적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1995년 7월에 저도 중풍으로 쓰러져 말을 잘 못하고 팔이 힘이 없어 글을 쓰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하나님께 치료받아 건강하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어느집에 계신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용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는데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그 청중들 중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도 있었는데 이들은 말씀을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고소할 건덕지를 찾기 위해 온 염탐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중풍을 앓고 있고 불쌍한 한 중풍환자가 있었는데 이 환자의 세 친구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예수님이 문둥병자도 고치시고, 앉은뱅이도 일으키시는데 자네도 예수님만 만나면 병을 고칠수 있을거야”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보라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누워 있었는데 병이 나을리가 없어” 하며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친구들의 권유를 받아들입니다.
권고하는 친구도 좋은 친구요, 권고를 받아들인 친구도 좋은 친구입니다. 예수님을 모셔 오려고 한 것이 아니라 환자를 예수님께 데려 가려고 한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마음입니다.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네 명의 친구가 이 중풍환자를 들것에 메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집으로 왔습니다. 네 친구가 메고 온 것은 이 환자 친구에 대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와 땀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고 질병이나 환난이나 고난으로 어려움가운데 있는 동료나 친구,가족,형제,자매,이웃에게 사랑과 관심을 갖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환자를 메고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왔는데 이 환자를 예수님 앞에 들여 놓고자 했으나,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도저히 예수님 앞에 들여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 앞에 친구를 내력 놓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유대인의 지붕을 계단으로 올라가게 되어있으며 옥상처럼 반반하고 흙기와로 되어있는데 지붕에 올라와 지붕을 뜯고 환자를 침상채 끈에 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 놓기로 결정했습니다.지붕에 올라와 지붕을 뜯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데 예수님 앞에 그 환자를 내려놓았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오직 예수님 앞에 나가기만 하면 치료받는 다는 당한 믿음과 열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친구를 치료하겠다는 강한 믿음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5절의 “예수님께서 저희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 집안에 있는 청중들도 천장이 뚫리고 하늘이 보이며 천장에서 내려오는 환자를 보았습니다. 또한 지붕을 뜯고 (흙이 덜어지기 때문에) 소리 때문에 말씀을 듣는데 방해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청중들은 얼굴을 찌프리며, 불평을 하고 속으로 저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의 생각과 반응은 모인 군중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위해 수고하는 그 수고와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행동하는 네 친구와 환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떠한 믿음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흔히들 믿음은 마음으로 믿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들 생각하지만 믿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여~!! 기적을 보여 주십시요. 그러면 믿겠나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먼저 너희의 믿음을 보여다오, 그 다음에 내가 기적을 보여주마’ 하십니다.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막2:17)고 하셨습니다. 정말 믿으면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어도 믿음으로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도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반드시 믿음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에 도착했을 때, 여리고 사람들은 전심전력으로 성을 철통같이 수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엿새동안 매일 한바퀴씩 돌되, 일곱째 날에도 성을 일곱번 돌고 난 뒤 제사장이 나팔을 불어 나팔소리가 날 때 백성은 일제히 고함을 치라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에 한번씩 돌고 진으로 돌아 왔습니다. 진에 와서 생각하면 “저렇게 크고 튼튼한 수비가 잘된 성이 무너질까?” 하도 부정적인 생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들어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자나고 나흥이 지나고 닷세가 지나갑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성이 무너진다고 생각보다는 성이 무너지지 않는 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더 깊어 집니다.엿새동안 성을 돌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무거운 시련을 겪에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이 무너질 것 같지 않아 절망적인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절망의 벽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위에 시기를 작정하고, 일곱째 날에도 성 주위를 일곱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때에 백성들이 일제히 할렐루야!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성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성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와르르 내려 앉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중풍병자가 누어있는 상에 줄을 매달아 지붕을 뚫고 지붕에서 내리려면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남의 집 지붕을 뚫고 구멍을 내면 집주인으로부터 “왜 지붕을 뜯느냐”는 시비가 있을 수도 있고, 지붕을 다시 수리해 주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자를 예수님 앞에 보내면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확실한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한 것입니다.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의 행동은 흐믓해 하시고 기쁘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중풍환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또한 그 친구들도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청중들의 반응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성미급한 베드로나 청중들은 인상을 지뿌리며 “ 저 몰상식한 사람들이 집회를 방해해!!”하며 비난했을 것입니다 밖으로 던져 버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온하고 인자하신 얼굴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흐믓해 하시며,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소자야!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사업이나 직장문제로 자녀나 장래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은 비난할 수도 있고 소외시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혀 다르십니다.사랑의 예수님은 여러분의 어려운 문제와 고통을 다 알고 계십니다. 같이 고통을 느끼시고, 아파하시며 긍휼히 여기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자를 보실때마다 같이 아파하시고 고통을 느끼시기 때문에 치료해 주셨습니다. 나병 환자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어 가셔서 손을 얹으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자 깨끗이 건강케 치유되었습니다. 나인성 과부가 독자가 죽자 상여를 따라가며 비통하게 울부짖은 것을 보시고 차마 더 이상 앞으로 가실 수가 없어서 상여에 가까이 가셔서 상여를 ?추시고, “울지말라”하시고, “청년아!일어나라” 명령하시자 죽은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이 과부의 애통과 슬픔이 꿈인지, 생시인지 감격과 기쁨과 찬양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질병으로 환난으로 경제문제로 고통을 겪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의 고통과 아픔을 아십니다. 긍휼히 여기십니다. 관심을 가지시고 같이 아파하십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을 믿고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 가십시요. 예수님은 가까이 오셔서 위로하시고 치료하시며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당신의 슬픔과 애통이 기쁨과 찬송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족한 저를 불상히 여기시고, 중풍과 여러가지 질병을 치유해 주시고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도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치유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죄의 용서로 나타났습니다.”소자야!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치유하시기 전에 먼저 근본적인 영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5절에 중풍병자에게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사함 받았느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생명을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소자야”(눅5:20)절에는 “이 사람아”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부드러운 연민의 정이 넘친 음성입니다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내가 지금 네 죄를 용서하셨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먼저 병을 치유하시기 전에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조금 생각해 봅시다.이 환자는 들것에 누워서 오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고,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환자는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이 떨어지자. 죄책으로 인한 갈등이 사라지고, 평안이 밀려 들어오며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어떤 병은 죄로 말미암아 옵니다. 그 죄를 회개하고 돌아서면 하나님께서 깨끗이 용서해 주십니다. 죄를 용서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평화의 관계로 회복되고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을 막고 있고 죄의 담벽이 무너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치료의 능력이 흘러 들어와 그 병이 치유되는 것입니다. 또한,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 “사죄권”이 있음을 선언하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 죄사함 받았느리라”하시자 “참담하도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느냐”하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것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의논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그 앞에는 어떠한 비밀이나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내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서기관들은 네 죄사함 받았노라가 더 쉽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풍병자야 일어나! 걸어가라고”하면 일어나 걸어가야 하는데 그들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생각하기에 더 어려운 일인 “중풍병자야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하심으로, 그 말씀대로 되어져 서기관들이 더 쉽다고 생각하고 “네 죄사함 받았느니라” 하는 말이 진리요 사실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10절에 “인자가 죄를 사라고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슴하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자 이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걸어갑니다. 예수님은 사죄권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즉 예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죄사함을 받고, 병도 고침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병만을 고치시거나 상한 마음만을 치유하시거나 영의 죄만을 치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전인을 사랑하시고 치유하신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도 중풍병,육신의 병만을 치유받은 것이 아니라, 영의 병인 죄도 사함 받았습니다.전인 치유는 기독교 복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없고 악령을 다룰 수 없는 것입니다.사람들이 병이 낫고 이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너무쉽게 생각하고 판단하려 듭니다. 그러나 남이야 알아 주리건 말건 본인의 체험속에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셨고, 나에게 사랑을 베푸셨다는 확신으로 기쁜 것입니다.
병이 나아서 기쁘고, 죄사함 받았음에 대한 증거, 즉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베푸셨다는 증거로 이적이 나타났기에 중요한 것이요 기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 보았습니까? 혹 병에 걸렷다가 기도하고 나았습니까? 아니면 실패했다가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 증거입니다.
세상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할지라도 예수님은 여러분을 이해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하는 복음이 나에게 나타난 것이기에 기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시간에 마음에 혹시 떠오르는 죄가 있다면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요.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은 이 아침에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다가오셔서 부드럽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이 사람아! 네 죄사함 받았으니라”
예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도 고쳐 주시며 죄와 병이 가져온 모든 해악에서 구원해주시고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받고 용서받고 치유받읍시다. 문제를 주님께 아뢰므로 해결 받으십시다.
주님은 여러분블 용서하시고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