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25-31 ㅣ 김남수 목사]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 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 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 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29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설교전문
사람이 아무리 부귀공명을 다 얻었다 할지라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불안 공포,염려,근심,좌절,절망이 가득한 이상 삶의 기쁨이나 행복은 결코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의 생애속에 부귀영화와 공명은 없다고 할지라도 그의 마음속에 평강이 가득하면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마음에는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평안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마음에 평안을 빼앗아 가는 다섯가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로 탐욕의 적입니다.
즉, 소유욕입니다. 모든 것은 다 가져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다 가질수도 없지만, 설혹 가졌다 해도 영원히 내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탐욕이 마음의 평안을 앗아 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기,질투 입니다.
내가 넉넉함에도 불구하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내가 못살아서가 아니라 남이 나보다 더 잘 살고, 똑똑해서 불만이 많습니다.질투하는 사람은 영원히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항상 세상을 암담하게만 보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고치지 못하는 병입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절망적으로만 보는 사람은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것만 무조건 좋게 보고 선망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좋지 않고, 남이 가진 것은 다 좋은 것입니다. 남의 것만 다 좋게 보는 것도 무서운 정신적 감옥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욕구불파만이 가득해서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 다른 사람의 나쁜 점만 자꾸 생각하게 되는 비관적인 사람입니다.
이것도 못말리는 것입니다. 남의 장점은 보지 못하고 꼭 단점만 찾아 봅니다. 꼭 나쁜 점만 보고, 그것을 지적하고, 그것만을 생각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평화가 힘의 근본이 됩니다.
그런데 평화가 깨어지고 나면, 무슨 일이든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평화가 그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곳이건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평화가 있을 때에 창조력이 있고, 지혜가 생겨납니다.건강도 평화에 달려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렌박사는 “ 근심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맞는 이야기 입니다.
어떤 근심이든 해결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자기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평안한 마음이 있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기도도 평화로운 가운데 해야 응답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기도를 해야,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평안”이란 단어는 히브리인들 말로는 “샬롬”입니다. 구약성경에 350회 이상 나오는 데 중요한 용어입니다. “샬롬”은 “평화,건강,완전”의 의미가 있으며 60회 정도는 “분쟁이 없는 안녕의 상태”를 의미했으며, 25회 정도는 “작별인사”나 “문안인사”로 사용하였습니다.m 신약에서 바울사도도 편지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을 찌어다”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평강은 하나님 은혜의 결과입니다.이 평강은 “온전함” 즉, 전인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까지를 포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구원과 전인적인 건강과 자유와 번영과 화목과 행복을 의미합니다.
평강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이웃과의 화목한 관계, 나자신과의 관계에서 진실과 평안을 얻는 자유한 관계를 말합니다.그러므로 평안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사람은 스스로 참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 내가 하나님을 발견하기까지는 그 어려서도 참 평안을 얻을 수 없었노라”고 했습니다.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모든 평안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사람이 절대로 참 평안할 수 없습니다.
본문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이 주는 평안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대조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한 번 서로 비교해 봅시다.
첫째, 세상이 주는 평안은 여건에 좌우됩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아져야 하고, 병든 사람은 건강해져야 합니다.세상이 주는 평안은 여건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관계에 기초합니다.바른 관계를 맺는데 문제가 있습니다.여건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Ex) 부부관계를 예로 들면 남편이 아내의 일을 하고, 아내가 남편의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남편은 남편이고, 아내는 아내입니다.그 관계의 유지, 그것이 바로 평화입니다.
둘째, 세상이 주는 평안은 능력에 의지합니다.
힘이 있어야 합니다. 약하면, 억울하고 분해서 못삽니다. 가난해도 억울 하고 무식해도 억울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평안은 영적인 상태에 의존합니다. 어떤 형평에 있느냐가 아니라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참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하나님과의 바른 영적인 상태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죄인은 어떤 여건에서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의인은 어떠한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평안합니다.
셋째, 세상이 주는 평안은 결과와 그에 따른 성취에 의존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 졌으면, 저것을 얻었으면”-바라고 원하며 참고 견디어 갑니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말하는 평안은 하나님의 축복과 그 과정에 기인합니다.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축복으로 향하는 과정입니다.그런고로 지금 이대로 충분히 평안합니다.
넷째,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문제가 없어야 평안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 다음 문제로 해결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끝이 없습니다.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평안은 고난중에도 평안합니다. 지금의 형평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순교자는 순교장에 가면서도 찬송부르면서 평안히 갑니다.
다섯째,세상이 주는 평안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평안은 영원한 것에 의존합니다.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으로 향한 오늘이 있으면,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러므로 세상이 주는 평안은 일시적이요, 피상적이요, 거짓된 것이요, 상대적이요,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주님의 평안을 주님이 주십니다.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기쁨이 충만할 때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그런데 주님은 나의 마음이 평안하므로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말씀하신 주님의 상황과 주님의 형편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불과 몇시간 후면,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무서운 죽음이요, 굴욕이며 부조리한 십자가를 바로 눈 앞에 바라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가롯 유다는 배신했고, 베드로는 내일 아침이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갈 것인데,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렇게 비통한 말씀을 하시는 가운데서도 “나는 평안하다.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다.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제 세상 권력이 오겠다.가야바가 있고, 빌라도가 있고, 로마군대가 있고,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 그러나 저는 나와 관계할 것이 없다”
저희가 아무리 나를 재판을 하고, 내를 매질을 하고, 죽여도 나와 아무상관이 없다.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내가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과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을 드러내려 함일 뿐이다고 하십니다.
아~! 놀랍습니다. 아주 초연합니다.어떻게 이렇게 평안할 수가 있습니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때가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니”-“평안하십니다”“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분의 마음속에서, 생각속에서 다 해결하시고 다 이겨버렸습니다. 초연하십니다.
이 평안이 예수님 마음속에 있었던 평안입니다. 놀라운 평안입니다“이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이 평안을 어떻게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26절에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줍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의 평안을 주십니다.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것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m 세상의 어떠한 여건으로든 참 평안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거룩한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믿을 때 모든 근심과 고통이 사라집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을 알때, 그리스도의 마음안에 있는 평안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평강의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m 빌립보서 4:6~7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합니다.
모름지기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기도할때 불만을 말하거나, 끓어오르는 정욕과 미워하는 마음과 분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간증을 하는데 결혼생활 10년동안 참 많이도 고생을 했답니다. 남편이 술을 너무 좋아해서 날마다 술 시중을 했답니다. 더구나 술이 만취되어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해서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때 처럼 남편이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잠든 남편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신세타령이 나옵니다.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합니까? 구슬피 울며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성령이 감동하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고 하셨지……”
그래서 고쳐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좌우간 감사합니다.”순간 마음이 스스로 감동이 됩니다
“ 그래도 과부보다야 낫지 않느냐?저런거라도 남편이 있는게 없는것보다 낫지! 어느때가면 사람이 될른지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저렇게 술을 많이 먹고도 제 집 찾아 돌아오는게 신통하고, 저렇게 허구헌날 술을 마시는데도 건강하니 감사하고, 나 예수 믿는 것 방해하지 않으니 감사하고, 한 가지 두 가지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 자꾸 생각납니다. 이렇게 감사하고 기도하는 동안에 얼굴이 환하게 피었습니다. 혼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아내를 보고 남편이 눈을 떴습니다. 남편이 놀라 묻습니다.
“술 주정뱅이하고 살면서 무엇이 좋아서 웃는거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그 부인은 감사한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 합니다. 남편이 듣더니 “너무 걱정하지마 예수 믿어 줄께”그러더랍니다.그 부인이 10년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한번의 감사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는 답답한 것 괴로운 것 많습니다.
잠깐만 멈추세요, 그리고 감사할 것을 찾아보십시요
감사와 더불어 기도하십시요m 평강의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나아가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라”? 심지가 견고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심지가 견고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십니다. 내가 안정되고 ,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함 받을 때, 내 이웃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평안함 가운데서 창의적 능력이 나타납니다. 흔들림이 없는 사람-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아예 뿌리채 흔들립니다. 도대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안정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정에 우리교회에, 우리민족에게 항상 함께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