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9:1-7 ㅣ김남수목사]
아볼로가 고린도로 떠난 후, 바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아볼로에 관한 기사는 바울의 첫 에베소 활동의 교량적 역할을 합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만난 첫 사람들은 아볼로처럼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바울은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도록 인도하였습니다. 이를 에베소의 오순절이라 부릅니다.
1절에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라고 합니다. “에베소”는 당시 로마 통치하에 있었던 아시아 주의 수도로서 에게 해안에서 5 km 들어가 있는 카이스터 항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동방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소아시아 전체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무엇보다도 소아시아의 최대무역의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 동시에 이곳은 헤라클레토스 등을 낳은 문화의 도시오, 예술의 도시로 극장이 웅장했습니다. 이 극장은 아데미의 전각과 더불어 세계 7 대 유물에 속한 것입니다. 에베소는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위의 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온 것은 제 2차 전도여행 중에 그 곳 회당의 유대인들에게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너희에게 오리라”(행 18:21)고 약속했던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란 ” 이미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12 제자를 지칭한 것이요,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에베소에서 만난 “어떤 제자들”이란 아볼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는 알았지만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의 이 사람들은 불완전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분명히 교회는 출석합니다. 교인들의 공동체로 모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교인들입니다. 미완성 교인들입니다. 그 이유인즉, 아볼로가 여기 와서 성경을 가르쳐 그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아볼로와 같은 미완성 교인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열심도 있고, 지식도 있고, 바르게 믿으려고 하는 진실함도 있는 편이지만 여전히 참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속에 복음의 씨앗이 없으므로 생명이 발아하지 못하고, 미완성 교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교역자를 잘못 만난 것입니다. 처음부터 사도 바울을 만났더라면, 참 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볼로를 만났기 때문에 그에게 배워서 그와 같은 불완전한 교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배운 대로 될 수밖에 없었고, 본대로 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부정을 해도 빠져 나갈 길이 없는 것이 이것입니다. 보고 듣고 하면, 알게 모르게 닮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그래요. 예봄 교회 다니다 보면, 아마도 예봄 교회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틀림없어요. 이번 세미나에 오신 분들이 봉사하는 우리 예봄 교회 성도들을 보고 참 훈련이 잘되어 있다고, 칭찬들을 자자하게 했습니다. 꼭 다들 프로들 같다고 칭찬들을 했습니다. 교회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기도와 찬송을 기쁨으로 힘 있게 부르짖어 한다든지, 봉사를 해도 성심을 다해서 정성껏 섬기는 마음으로 한다든지, 그러한 체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말씀합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아볼로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 사람들은, 그래서 사도 바울이 와서 그들을 볼 때 복음의 씨앗이 그들 속에 없었고, 체험적인 신앙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성령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고 중생했다면,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 있는 증거자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 속에 복음의 씨앗이 없었기 때문에 생명이 발아하지 못하고 힘이 없었으며, 성령으로 충만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2절에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먼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솔직히 대답합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중생하여 성령을 받았다면, 성령의 감동으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령 충만을 받았는지에 대해 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 충만(성령 세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능력이 없고, 기쁨이 없고, 힘이 없고, 봉사가 힘들고 짐스럽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바울의 질문에 요한의 제자들은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구원은 성령의 역사로 예수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권능과 능력 있는 신앙인이 되는 것은 중생한 성도가 믿은 후, 성령의 충만(세례)을 받으므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절에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바울의 두 번째 질문은 그들이 받은 세례가 어떤 세례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바울은 그들이 받은 세례가 세례 요한에 의해 선포되고 집행된 세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란?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주던 물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예비적 단계, 즉 마음의 변화와 전환을 위한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여 평탄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증거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시키기 위해 메시아보다 앞서 온 세례 요한의 시역이었습니다(말 4:6).
그러니 바울이 만난 12 사람은 세례 요한에게 심취되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4, 5절에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누가복음 3:3-4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정의를 위하여 살아라. 그렇다고 직장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있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윤리적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내 뒤에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지, 그리스도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에 그 때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지금 천국이 왔다. 지금 여기에 와 있다고 말씀합니다. 메시야 그의 은혜를 전했고, 복음을 전했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더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전하고, 예수님 자신이 구주이심을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세례요한이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선포했던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이심을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의 지상 사역을 완수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셨음을 설명했습니다. 이로써 세례 요한이 증거 했던 예수님을 부각시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세례 요한의 세례 보다, 성령 세례를 대망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눅 3:4) 쇠하여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 소리의 실체로써 흥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요 3:30). 바울의 이와 같은 설명을 듣던 12 사람은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추구했던 모든 것과 자신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바울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중생하여 내적으로 변화된 것을 외적인 의식과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신앙고백을 교회 앞과 하나님 앞에서 고 백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내가 예수님과 연합해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내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여 영적으로 죽은 내가 다시 살아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예식이 물세례입니다.
재미있는 실례가 있습니다. 김 재준 목사님이라면 1901년 태어나서 1987년 까지 사셨던 유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중등학교 다닐 때에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김 익두 목사님께서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실 때에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3년 동안 열심히 교회에 다녔지만 세례 같은 것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습니다. 그는 형식적인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어 3년이 지나도록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김영구 목사님이 세례를 받으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런데도 “안 받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필요 없습니다.” 했더니,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남녀가 연애하고 동거할 수는 있지만 결혼식을 안 하면 그 사랑은 무효”라고 비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감동이 되어서 “그러면 결혼식은 해야지요.” 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두고두고 생각한 것은 이 목사님의 세례에 대한 설명이 얼마나 오묘하니 “맞아, 사랑이란 그런 것이야. 같이 살아도 소용이 없다. 결혼식을 해야지. 결혼식을 해서 만방에 고해야지. 나는 아무개의 아내요. 나는 아무개의 남편이요. 이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꼭 있어야 되겠다. 그래서 완전한 공인을 받아야 되겠다. 공인된 예식을 가져야겠다.”- 생각을 해서 세례를 받았더니 더 큰 은혜를 받아서 확실한 교인이 되었고, 마침내 신학자요 목사님으로 일평생 큰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6, 7절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12 사람쯤 되니라”존 스타트와 같은 신학자나, 많은 목사님들이 물로 세례를 받은 때에 중생했으므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새 생명을 얻고 중생했지만 그 때 성령 충만한 권능을 다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중생한 즉시, 곧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곧 바로 능력 있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고넬료와 그의 권속들은 중생과 동시에 성령 세례를 받았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중생한 후에 신앙이 성장한 다음, 성령 세례를 받으므로 권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병자들도 고치고, 귀신들도 쫓아내고, 능력 있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중생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써 성령님이 그의 속에 와 계신 것이지만, 성령의 충만한 은혜,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안수를 통하여 성령을 받게 됩니다.
사마리아 교회에서도 빌립의 전도를 받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와서 안수하자 성도들이 성령을 받았으며, 오늘 본문 에베소 교회에서도 바울이 안수하므로 많은 사람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꼭 안수해야만 성령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고넬료 가정에서는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그들이 다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였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120 명이 열심히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셨습니다. 이 때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안수를 받음으로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는 체험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물론 성령 세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서 성령 세례를 사모하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헌신된 마음과, 뜨거운 열망이 없는 상태에서는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진실로 모셔 들이고, 간절히 성령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주십니다. 에베소 성도 12명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를 하기 시작하자 곧 에베소 교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성령의 세례(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이 충만한 성도가 되어,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 예봄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