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1-3ㅣ김남수 목사]
어떤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그려보겠다고 마음먹고 그 아름다운 것을 찾아 다녔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지나가는 군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화입니다.”
신혼 여행을 떠나는 두 젊은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의 대답이 화가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가지를 합친 것이 어디 없을까? 그런데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이 세가지를 한데 모아놓은 소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무 성과도 없이 화가는 잔뜩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문에 돌아오는 그를 보고 아이들이 “아빠”하면서 달려옵니다. 그때, 그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에서 믿음을 보았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구나”
또한 남편이 오랫동안 집을 비웠는데도 아내는 여전히 정숙하고 부드러운 마음씨로 영접해 줍니다.
“아! 이것이 사랑이구나”
그는 집안에 들어설 때에 모든 생각을 다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느꼈습니다.”
비로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가정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정을 화폭에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의 슬픔은 가정을 떠나서 행복을 찾는데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향락을 찾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독신주의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고, 방종에서 행복을 찾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참 사랑과 행복은 가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떠남으로 인하여 세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꽃피는 봄 5월은 「가정의 달」인데, 지난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주일학교 학생들과 과학교실에 참여하는 어린이들과 학부형들을 초대하여 달란트 시상식이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열심히 준비하여 학부형들과 어린이들이 함께 달란트 시상식을 하는데, 기쁘고 즐거운 행사가 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달란트 시상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효를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도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과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애굽기 20:12)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명기 21:18~21절을 보면 “ 그 아비의 말이나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경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 그 성읍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라고 말합니다. 대단히 준엄한 말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는 유교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효를 모든 윤리의 기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유교학자들은 기독교에는 효가 없다, 서양인들의 종교에는 효가 없다고 하며, 동양 사람들의 종교로는 맞지 않는다고 거부합니다. 이것은 성명을 몰라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유교학자에게 이 두 구절 성경 말씀을 보여 주면서 말했습니다. “기독교에는 효가 없다고 하는 것이 무슨 말이요? 기독교는 이렇습니다. 보세요.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잘되며 장수 할 뿐 아니라, 효도하지 않고 불효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까?” 이 유교학자가 정말 그런 말씀이 있음을 보고, 그때부터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어버이에 대하여 “부모를 순종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순종과 공경이고, 한마디로 하면 효입니다. 부모님께 순종이란, 노예가 주인에게 하는 굴종이 아닙니다. 자의적으로 하는 인격인 순종입니다. 주안에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공경이란, 우러르고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높이는 마음이며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답하는 사랑입니다.
성경에 맨 처음 나오는 효자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27세 때, 이삭을 하나님께서 모리아산에 가 산 제물로 바치라 하십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말합니다. “이삭아! 하나님께서 너를 잡아 산 제물로 바치라 하신다” 어떤 자식이든 만이 만, 모두가 다 마다할 것입니다. “나이가 많이 드시더니, 노망하셨나 봐 “하면서 항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께 순종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삭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말없이 제단에 놓입니다. 이삭은 순종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빌립보서 2:8절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8:11절도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은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십자가인데 내가 지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가장 큰 효를 예수그리스도께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효는 없을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하여 종교개혁자들은 공경해야 할 네 종류의 부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루터는 「대요리 문답」에서 이것을 상세히 설명하여 교인들에게 암송하도록 하였습니다.
첫째는 나를 낳아준 부모입니다.
둘째는 영적인 부모입니다. 교역자와 목사, 캐톨릭에서는 교역자를 신부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Father, 아버지입니다.
셋째는 나에게 지식을 공급해 주는 아버지인데, 중국에서는 “사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스승, 선생님을 말합니다.
넷째는 정치가를 아버지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왕을 훼방하는 자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정치가를 함부로 매도합니다. 함부로 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파괴되고 질서가 무너집니다. 잘하든 못하든 그 자리에 있는 한에는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들이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할까요? 효를 연구한 학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네 가지 조건을 들고 있습니다.
첫째, 부모의 심려를 덜어 드리고 평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행복의 조건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불효하는 것입니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 자녀들이 주일을 번번히 범하고,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한다면 큰 불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신앙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평안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리스도께 인도되도록, 위해서 기도 드리고, 더욱 부모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면 부모님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나쁜 친구와 어울려 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하면 큰 불효를 하는 것입니다. 도덕으로 올바른 생활을 하여 부모를 편안하게 해 드려야 효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자녀는 부지런히 일해서 생활고에 허덕이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가난 속에서 허덕이면 부모가 편안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은총을 통해 저주에서 해방 받은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정직과 성실, 근면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의 자녀인 것을 인정하고, 자랑하십시오.
부모님은 충실하게 잘 사셨습니다. 훌륭하게 사셨습니다. 부모님이 어떤 직업을 가지셨던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끄러워 해서는 불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고하고 유식한 정적들이 공박을 하고 괴롭힙니다. 한번은 상원에 나아가 연설을 할 때, 반대파가 면박을 줍니다. 모욕하기를 “구두 수선하는 그런 천한 사람의 아들을 우리가 대통령으로 모시게 됐군”하면서 구두를 벗어 들고는 “이 구두도 당신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것이요”라고 소리 칩니다. 링컨은 태연하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모처럼 기억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직업에 충실했습니다. 구두를 만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어깨 넘어 배운 바가 있으니, 당신의 구두가 탈 나거든 나에게 가져 오시오. 내가 기꺼이 수선해 드리겠습니다.” 링컨은 아버지를 창피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는 사람이었다고 떳떳하게 자랑했습니다. 이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의 노후 생활을 돌보아 드리십시오.
부모를 공경한다면, 노후에 부모에게 입을 것, 먹을 것, 거할 곳을 제공해 드려야 합니다. 노인들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음으로 수입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노년에는 자식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식으로부터 냉대를 받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서글프고 상처를 받겠습니까?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정성과 물질을 드려 부모를 모셔야 합니다. 부모의 생활을 돌보지 않고, “복 주십시오”하는 자식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응답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실천적인 모습을 자녀에게 물려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개인주의가 팽배한다 해도 부모의 노후 대책을 마련해 드리는 일은 기본 윤리요, 가정마다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틈나는 대로 부모님과 대화하고 주안에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노인이 되면 말할 상대가 없어 외로운 것입니다. 이런 외로움을 자녀들이 달래주지 않으면 누가 달래주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결혼해서 분가했을 찌라도 틈나는 대로 양가의 부모를 찾아가 신앙 이야기를 비롯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마지막으로, 부모를 기쁘고 영화로움을 느끼도록 해 드리십시오.
참으로 효도한 사람이라면, 부모를 즐겁고, 영화롭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칭찬을 들을 때, 기쁘고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전도를 하면서 어린아이를 번쩍 껴안고 “아! 이 녀석 잘 생겼다”, “이 다음에 한자리 하겠는데”하고 칭찬부터 하면, 엄마는 칭찬이 좋아서 전도에 귀를 기울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실력을 쌓아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때, 부모는 크게 기쁘고,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KBS방송 프로그램 “행복한 세상”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잃고, 딸 하나만 데리고 사는 어머니가 분식집을 합니다. 딸이 고등학교에 다니는데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해서 미술학원에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분식집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막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우산을 들고 미술학원으로 달려갑니다. 달려가서 문 앞에 서서 자기 모습을 보니 일하던 그 모습으로 그냥 온 것입니다. 앞치마를 둘렀지요, 옷은 말이 아니지요, 밀가루가 덕지덕지 붙였습니다. 이 일을 어쩌나 딸이 부끄럽다고 생각할 텐데, 우산을 들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2층에서 딸이 내려다 보는 것입니다. “엄마 왔다”하고 손을 흔드는데, 딸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엄마 꼴이 말이 아니어서 창피해서 안 나오나 싶어 어머니는 그냥 집으로 돌아 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한달 동안 말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한달 후에 딸이 그림을 잘 그려서 상을 받는다 해서 미술학원에 갔습니다. 딸이 특상을 받았는데, 수상 작품의 이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며 서있는 그날의 어머니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서 딸을 얼싸안고 너무 기뻐 행복에 겨워했습니다. 여러분! 효도가 어디 있습니까? 참으로 부모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모든 부족을 엎을 때, 그 속에 행복이 있고, 참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부모님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전력을 기울여 신앙인이 되게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그처럼 불효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효도해야 장수하고, 효도해야 형통한다고 하며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확실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되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축복하는 마음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예봄교회 성도 여러분! 각 가정이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잘 되고, 축복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